김진종(金振宗)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9C4C885B1496X0 |
자(字) | 효선(孝善) |
호(號) | 신재(新齋) |
생년 | 1496(연산군 2) |
졸년 | 1557(영종 12)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선산(善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보(金俌) |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진종(金振宗)
1496년(연산군 2)∼1557년(영종 12). 조선 중종 때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효선(孝善), 호는 신재(新齋). 판관인 김보(金俌)의 아들이다.
학행이 고명하고 충절이 높아 1518년(중종 13) 현량과(賢良科)에 피천(被薦)되었으며, 1528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주서‧사간원정언‧경성판관(鏡城判官)을 역임하였으며, 1541년 홍문록(弘文錄)에 오른 뒤 이듬해 홍문관교리와 부응교를 거쳐 사간원헌납이 되었다. 성균관전적으로 재임중 1545년(명종 즉위)에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파직되어 향리인 선산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태인으로 귀양갔으며, 1547년 순창으로 귀양가서 11년동안 적소에서 시작(詩作)생활을 하다가 죽었다.
1570년(선조 3)에 신원되어 직첩을 돌려받았으며, 사신(史臣)이 평가하기를 학문이 순수하고 바르며, 충효와 대절(大節)이 있다고 하였다.
학행이 고명하고 충절이 높아 1518년(중종 13) 현량과(賢良科)에 피천(被薦)되었으며, 1528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주서‧사간원정언‧경성판관(鏡城判官)을 역임하였으며, 1541년 홍문록(弘文錄)에 오른 뒤 이듬해 홍문관교리와 부응교를 거쳐 사간원헌납이 되었다. 성균관전적으로 재임중 1545년(명종 즉위)에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파직되어 향리인 선산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태인으로 귀양갔으며, 1547년 순창으로 귀양가서 11년동안 적소에서 시작(詩作)생활을 하다가 죽었다.
1570년(선조 3)에 신원되어 직첩을 돌려받았으며, 사신(史臣)이 평가하기를 학문이 순수하고 바르며, 충효와 대절(大節)이 있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宣祖實錄
大東野乘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宣祖實錄
大東野乘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집필자]
이문기(李文基)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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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