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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처순(安處順)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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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순지(順之)
호(號)기재(幾齋)
호(號)사제당(思齊堂)
생년1492(성종 23)
졸년1534(중종 29)
시대조선전기
본관순흥(順興)
활동분야문신 > 문신
안기(安璣)
조부안지귀(安知歸)
외조부임옥산(林玉山)
출신지남원

[상세내용]

안처순(安處順)
1492년(성종 23)∼1534년(중종 29).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순지(順之), 호는 기재(幾齋)사제당(思齊堂). 남원 출신.

조부는 전주부윤 안지귀(安知歸)이며, 부친은 성균관전적 안기(安璣), 모친은 능성현령(綾城縣令) 임옥산(林玉山)의 딸이다.

6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중부(仲父)인 판서 안침(安琛)에게 의탁하여 성장하였다.

1513년(중종 8)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정자 겸 경연전경(正字兼經筵典經)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을 거쳐, 1518년 홍문관박사가 되었으나,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하여 구례현감으로 제수되었다.

이해 2월 구례현감으로 제수될 때 왕이 인견하고 학교를 일으키라고 교시하자, 그는 『근사록(近思錄)』을 간행, 보급하여 지방학교 진흥에 노력하였다.

1519년 기묘사화에 이행(李荇)과 함께 연루되었다가 겨우 화를 면하고 은퇴하였다가 성균관학관(成均館學官)경성교수(鏡城敎授)를 지내고, 1533년 전적으로 제배된 뒤 양현고주부(養賢庫主簿)봉상시판관(奉常寺判官)에 이르렀다.

43세에 병을 얻어 남원부 흑성산(黑城山)에 안치됨으로써 일생을 마쳤다.

그의 성품은 암약(暗弱)하여 강직성과 결단력이 부족하였으나 간특하지 않아 사화 때에도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남원영천서원(寧川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國朝人物志
淸選考
思齊堂實記
順興安氏族譜

[집필자]

조병로(趙炳魯)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