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金光粹)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AD11C218B1468X0 |
자(字) | 국화(國華) |
호(號) | 송은(松隱) |
생년 | 1468(세조 14) |
졸년 | 1563(명종 18)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안동(安東[舊]) |
활동분야 | 문학 > 시‧시조인 |
부 | 김극해(金克諧) |
저서 | 『송은집(松隱集)』 |
저서 | 『경심잠(警心箴)』 |
[상세내용]
김광수(金光粹)
1468년(세조 14)∼1563년(명종 18). 조선 중기의 시인. 본관은 안동(安東[舊]).
자는 국화(國華), 호는 송은(松隱).
부친은 지례현감 김극해(金克諧)이다.
1501년(연산군 7)에 진사가 되었으나 과거에 집착하지 않았다. 고향인 의성의 북촌에 머물면서 시가를 읊조리며 청빈하게 지냈으며,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여 부근의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죽은 뒤 대곡산(大谷山)에 장사지냈는데, 그뒤 외손인 유성룡(柳成龍)이 왕의 명을 받아 제사지내고 묘를 살펴보았다. 의성의 장대서원(藏待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송은집(松隱集)』과 『경심잠(警心箴)』이 있다.
자는 국화(國華), 호는 송은(松隱).
부친은 지례현감 김극해(金克諧)이다.
1501년(연산군 7)에 진사가 되었으나 과거에 집착하지 않았다. 고향인 의성의 북촌에 머물면서 시가를 읊조리며 청빈하게 지냈으며,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여 부근의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죽은 뒤 대곡산(大谷山)에 장사지냈는데, 그뒤 외손인 유성룡(柳成龍)이 왕의 명을 받아 제사지내고 묘를 살펴보았다. 의성의 장대서원(藏待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송은집(松隱集)』과 『경심잠(警心箴)』이 있다.
[참고문헌]
國朝人物考
增補文獻備考
增補文獻備考
[집필자]
차용걸(車勇杰)
성명 : "김광수(金光粹)"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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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