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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대군(齊安大君)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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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이현(李琄)
자(字)국보(國寶)
생년1466(세조 12)
졸년1525(중종 20)
시대조선전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왕실 > 왕자
이임(李琳)
안순왕후 한씨(安順王后韓氏)
처부김수말(金守末)
처부박중선(朴仲善)

[상세내용]

제안대군(齊安大君)
1466년(세조 12)∼1525년(중종 20). 조선 중기의 종실.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현(李琄). 자는 국보(國寶). 예종의 둘째아들이며, 모친은 안순왕후 한씨(安順王后韓氏)이다.

4세 때 부왕인 예종이 죽자, 왕위계승의 제1후보자였으나 세조비정희왕후(貞熹王后)가 아직 어리고 총명하지 못하다고 반대하여 대신 성종예종을 이어 왕위에 즉위하였다.

1470년(성종 1) 5세의 나이로 제안대군에 봉해져 녹봉(祿俸)과 직전(職田)을 지급받았으며, 후일 세종의 제5자인 평원대군(平原大君) 이임(李琳)의 후사로 입양되었다.

12세에 사도시정(司䆃寺正) 김수말(金守末)의 딸과 혼인하였으나 어머니 안순왕후에 의하여 내쫓긴 바 되어, 14세에 다시 박중선(朴仲善)의 딸과 혼인하였지만, 김씨를 끝내 못잊어하자 1485년 성종이 복합(復合)을 허락하였다.

1498년(연산군 4) 안순왕후의 상을 입은 뒤부터는 홀로 거처하였으며, 평생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았고, 다만 성악(聲樂)을 즐기고 사죽관현(絲竹管絃)을 연주하기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연산군이 네 차례나 음률(音律)을 아는 여자를 궁중으로 맞아들여 그에게 내렸으나 따르지 않았다.

『패관잡기(稗官雜記)』에는 그를 평하여 “성품이 어리석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진실로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몸을 보전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감춘 것”이라는 또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는 결국 왕위계승을 둘러싼 왕실세력과 훈신(勳臣)의 각축 속에서 희생된 인물이었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璿源系譜
國朝人物考
大東野乘

[집필자]

이병휴(李秉烋)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