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김감(金勘)

[요약정보]

UCIG002+AKS-KHF_12AE40AC10FFFFB1466X0
자(字)자헌(子獻)
호(號)선동(仙洞)
시호(諡號)문경(文敬)
생년1466(세조 12)
졸년1509(중종 4)
시대조선전기
본관연안(延安)
활동분야정치 > 정치가
김원신(金元臣)
증조부김자지(金自知)
공신호정국공신(靖國功臣)

[상세내용]

김감(金勘)
1466년(세조 12)∼1509년(중종 4). 조선 중기의 정치가.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헌(子獻), 호는 일재(一齋) 또는 선동(仙洞).

안동대도호부사 김원신(金元臣)의 아들이며, 문정공(文靖公) 김자지(金自知)의 증손이다.

1489년(성종 20) 진사가 되었고, 이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정자에 임용되었다.

1492년에는 유숭조(柳崇祖)정여창(鄭汝昌) 등과 함께 호당(湖堂)에서 천문‧역법을 연구하였다.

1498년 홍문관부교리에 올랐고, 이어서 교리응교전한직제학을 역임하고, 1501년(연산군 7)에 부제학이 되었다.

이어 병조참지가 되고, 동부승지우부승지좌부승지우승지를 거쳐 도승지에 임명되었다. 이어 호조참판에 임명되고 동지성균관사지의금부사홍문관대제학추쇄도감제조(推刷都監提調) 등을 겸하였다.

임사홍(任士洪)과 더불어 갑자사화를 다스려 예조판서에 임명되었다. 당시 연산군의 폭정이 심화되어 금표(禁標)를 세워 도성 주변의 백성을 원방으로 이주시키고 사냥을 일삼았을 때, 그가 금표안내문을 지었고, 추천시(鞦韆詩)로써 연산군에 아첨하였다.

그뒤 의정부우찬성을 거쳐 판중추부사로서 경상도관찰사를 겸임하였고, 연산군에 충성을 서약하는 경서문(敬誓文)을 찬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뒤 중종반정에 협력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2등에 책록되고, 연창부원군(延昌府院君)에 봉해졌다. 이어 감춘추관사(監春秋館事)가 되어 『연산군일기』를 편찬하는 데 참여하였다.

그러나 1507년(중종 2) 박경(朴耕) 등이 박원종(朴元宗) 등을 도모하려는 모의에 연좌되어 금산에 유배되었다가, 혐의가 풀려 연창부원군으로서 영경연사(領經筵事)를 담당하였으나, 1509년에 죽었다.

중종반정 이후 줄곧 연산군 때의 총신이었다는 이유로 사림에 의해 지탄을 받았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참고문헌]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新增東國輿地勝覽
冲齋集

[집필자]

최완기(崔完基)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