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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개(申用漑)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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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개지(漑之)
호(號)이요정(二樂亭)
호(號)송계(松溪)
호(號)수옹(睡翁)
시호(諡號)문경(文景)
생년1463(세조 9)
졸년1519(중종 14)
시대조선전기
본관고령(高靈)
활동분야문신 > 문신
신면(申㴐)
조부신숙주(申叔舟)
저서『이요정집』
공신호원종공신(原從功臣)

[상세내용]

신용개(申用漑)
1463년(세조 9)∼1519년(중종 14).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개지(漑之), 호는 이요정(二樂亭)송계(松溪)수옹(睡翁).

영의정 신숙주(申叔舟)의 손자이며, 관찰사 신면(申㴐)의 아들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483년(성종 14) 사마시에 합격하고 1488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그해에 승문원에 등용되었다.

그뒤 수찬교리를 역임, 1492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에 김종직의 문인이라 하여 한때 투옥되었으나 곧 석방되어 직제학을 거쳐 도승지가 되었다.

1502년 왕을 기피하는 인물로 지목되어 충청도수군절도사로 좌천되었다가 이듬해 형조판서를 거쳐 예조참판이 되어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뒤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전라도 영광에 유배되었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 후 형조참판으로 서용되었으며, 이어 홍문관예문관대제학을 역임, 이듬해 성희안(成希顔)과 함께 명나라에 가서 고명(誥命)을 받아온 공으로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었다.

그뒤 대제학우참찬대사헌을 거쳐서 이조병조예조판서를 역임, 우찬성이 되었다.

1516년에 우의정에 오르고, 1518년 좌의정에 이르렀다. 기품이 높고 총명하여 문명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활쏘기 등 무예에도 뛰어나 문무를 겸비하였다. 인품 또한 꿋꿋하여 범하지 못할 점이 있어 당시 선비들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일찍이 성종은 그의 높은 학덕을 사랑하여 어의(御衣)를 벗어서 입혀준 일이 있었다고 한다.

저서로는 『이요정집』이 있고, 편서로는 『속동문선』『속삼강행실도』가 있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國朝人物考

[집필자]

이재범(李在範)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