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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덕(洪潤德)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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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희부(熙夫)
생년1454(단종 2)
졸년?(미상)
시대조선전기
본관남양(南陽[唐])
활동분야문신
홍경손(洪敬孫)

[상세내용]

홍윤덕(洪潤德)
1454년(단종 2)~미상. 조선 전기 문신. 자는 희부(熙夫)이며, 본관은 남양(南陽[唐])이다.

증조부는 홍상부(洪尙溥)이고, 조부는 홍지(洪智)이며, 부친은 홍경손(洪敬孫)이다.

1492년(성종 23) 식년시 문과에서 병과 17위로 급제하였고, 이후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정언(正言) 등을 역임하였다.

1497년(연산군 3) 서계를 올려, 영안북도 절도사로 임용된 변수(邊脩)의 자질을 논하였다. 영안북도는 야인의 침략이 잦은 지역이라 변장(邊將)이 사살되는 일이 있는데 변수 같은 경박하고 세쇄(細瑣)한 자가 지킬 곳은 아니니 개차(改差)하라는 청이었다. 다음날에도 변수의 자질을 논하며, 변수는 남방의 수령으로 나갔을 때도 사기죄를 범한 인물인데 북방의 중요한 거진(巨鎭)은 책임이 막중하므로 감당할 곳이 아니라고 청하였다. 같은 해 9월에는 공조참의로 임명된 이창신(李昌臣)이 친척 이윤(李掄)의 재화를 취해 탄핵받고 파직된 적이 있고, 지제교(知製敎)‧종부시정(宗簿寺正) 등을 역임하였을 때도 계속 탄핵받은 바 있으므로 6조에 서용되기에 부족하다는 서계를 올렸다. 1499년(연산군 5)에는 야인의 정벌은 백성이 휴식할 수 없고 국맥(國脈)이 상하므로 정벌보다는 방비에 힘쓸 것을 상소하였다.

[참고문헌]

燕山君日記

[집필자]

나영훈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