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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현(李仲賢)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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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준성(遵聖)
호(號)율간(栗澗)
생년1449(세종 31)
졸년1508(중종 3)
시대조선전기
본관재령(載寧)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이중현(李仲賢)
1449년(세종 31)∼1508년(중종 3). 조선 전기 문신. 자는 준성(遵聖)이고, 호는 율간(栗澗)이다. 본관은 재령(載寧)이고, 거주지는 경상남도 함안(咸安)이다.

증조부는 이일선(李日善)이고, 조부는 이오(李午)이다. 부친 이개지(李介智)의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외조부는 하경리(河敬履)이고, 처부는 백계분(白啓芬)이다. 형 이맹현(李孟賢)이 있다.

1476년(성종 7) 별시 병과 4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홍문관부수찬(弘文館副修撰) 등을 지냈고, 1490년(성종 21) 품계가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이후 예조참의(禮曹參議)‧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 등을 지냈다.

1494년(성종 25) 연산군이 즉위한 다음에 권력을 휘두르는 간신을 탄핵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벼슬에서 물러났다. 1497년(연산군 3)에 다시 영해부사(寧海府使)로 내려갈 때 16살인 조카 이애(李璦)과 함께 갔는데, 이곳에서 이애은 진보백씨(眞寶白氏)와 혼인하면서 영해에 계속 머물렀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나자 다시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으며, 양양부사(襄陽府使)로 있을 때의 공적으로 품계는 가선대부(嘉善大夫)에까지 이르렀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