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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연말(表沿沫)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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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소유(小游)
호(號)남계(藍溪)
생년1449(세종 31)
졸년1498(연산군 4)
시대조선전기
본관신창(新昌)
활동분야문신 > 문신
표계(表繼)
출신지함양

[상세내용]

표연말(表沿沫)
1449년(세종 31)∼1498년(연산군 4).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신창(新昌). 자는 소유(小游), 호는 남계(藍溪). 함양 출신.

감찰 표계(表繼)의 아들로,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약관에 문행(文行)이 세상에 알려지고 당대의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 등과 함께 문장에 뛰어 났다.

같은 문하의 조위(曺偉)김일손(金馹孫) 등과 깊은 교유관계를 가졌다.

1472년(성종 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에 들어가고, 1486년 문과 중시에 다시 병과로 급제한 뒤 장령사간 등을 거쳐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벼슬 첫길인 예문관 시절에 한림의 여러 선생들이 관례로 신관(新官)들을 침포(侵暴)하여 금육(禁肉)과 여악(女樂)으로 주연(酒宴)을 베푼 사실이 성종에게 알려져 징계가 내렸는데, 그도 이 자리에 들었다가 파직되어 향리로 돌아가 지내게 되었다.

이후로 향회(鄕會)에서 금육을 차린 것을 보면 결코 성법(聖法)을 다시 어길 수 없다 하고 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의 상을 주자의 『가례』에 따라 치른 일로써, 스승인 선산부사 김종직의 추천을 받아 자급(資級)이 하나 높여 졌다.

그뒤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고, 무오사화 때 경원으로 유배가던 중 객사하였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剖棺斬屍) 당하였고, 과거시험에서 서거정(徐居正)의 문생이 된 인연으로 『필원잡기(筆苑雜記)』의 서문을 쓰기도 하였다.

「논학(論學)」이라는 글에서 김종직의 문인을 중심으로 하는 초기 사림파의 학문관과 정치관의 일단을 보여 주고 있다. 뒤에 신원되어 함양귀천(龜川) 향현사(鄕賢祠), 함창임호서원(臨湖書院)에 제향되었다.

1854년(철종 5)에 후손 표석준(表奭峻)에 의하여 간행된 『남계문집』 4권 2책이 전한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國朝榜目
藍溪文集
秋江冷話
筆苑雜記
燃藜室記述

[집필자]

이태진(李泰鎭)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