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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형(洪泂)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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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연(子淵)
생년1446(세종 28)
졸년1500(연산군 6)
시대조선전기
본관남양(南陽[土])
활동분야문신 > 문신
홍귀해(洪貴海)
여흥민씨(驪興閔氏)

[상세내용]

홍형(洪泂)
1446년(세종 28)∼1500년(연산군 6).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土]). 자는 자연(子淵).

부친은 경상좌도수군절도사 홍귀해(洪貴海)이며, 모친은 여흥민씨(驪興閔氏)이다.

1477년(성종 8) 춘장문과(春場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1479년 승정원주서가 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1489년 경원판관이 되었다.

이때 휘하 군사들이 불법으로 들깨를 무역하고 밤중에 성을 넘어 야인 지역으로 들어가 도둑질하다 붙잡힌 사건이 일어나 파직되었다가 다시 장령에 기용되었다.

1494년 사간으로 있을 때, 흥덕사(興德寺)에서 불사(佛事)를 빈번히 열고 그때마다 사족부인들이 남자들과 어울려 풍기가 문란함을 들어 이를 억제할 것을 진언하였다. 이어 성균관유생들의 불교배척상소가 지나치게 격렬하다 하여 벌을 주자는 조정의 여론에 대하여 자고로 성균 유생들은 언사(言辭)가 없으면 죄짓는 것으로 여겼음을 들어 그 부당함을 주장하였다.

1497년(연산군 3) 문신으로 활을 잘 쏘고 무예에 능하다 하여 온성부사에 임명되었다가 70살이 넘은 노부모를 모시는 자는 300리 밖의 수령에 임명하지 않도록 된 『경국대전』의 규정을 들어 간청하는 노모의 진언이 받아들여져 취소되고 홍문관부제학이 되었다.

그뒤 우부승지에 이어 승지가 되었는데 1504년 연산군의 생모 윤비폐출사건(尹妃廢黜事件) 당시 승정원주서로 이에 적극 개입하였다 하여 갑자사화로 처형되고 이어서 부관참시(剖棺斬屍)되었다.

[참고문헌]

世祖實錄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經國大典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집필자]

문수홍(文守弘)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