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성군(德城君)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355C131AD70B1431X0 |
이명(異名) | 이민(李敏) |
자(字) | 자눌(子訥) |
시호(諡號) | 이도(夷悼) |
생년 | 1431(세종 13) |
졸년 | 1473(성종 4)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왕실 > 종친 |
부 | 이인(李裀) |
[상세내용]
덕성군(德城君)
1431년(세종 13)∼1473년(성종 4). 조선 초기의 종실.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민(李敏). 자는 자눌(子訥). 함녕군(諴寧君)
이인(李裀)의 아들이다.
1442년(세종 24) 처음 통정대부로서 원윤(元尹)이 되고, 1444년 명선대부로 곤의정(坤義正)에 올랐다.
3년 뒤 종2품 정의대부의 품계를 받고 덕성군에 봉하여졌으며, 1470년(성종 1) 관례에 따라 승헌대부에 올랐으나 이때부터 병이 있어 늘 약으로 지탱하다가 1473년 43세로 죽었다.
성품이 단아, 인자하였으며 경사(經史)를 두루 섭렵하여 일찍이 세조가 강목(綱目)에 대하여 물었을 때 답변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아들이 없어 옥산군(玉山君) 이제(李躋)의 아들 이순(李揗)으로 입후(立後)하게 하였다. 시호는 이도(夷悼)이다.
1442년(세종 24) 처음 통정대부로서 원윤(元尹)이 되고, 1444년 명선대부로 곤의정(坤義正)에 올랐다.
3년 뒤 종2품 정의대부의 품계를 받고 덕성군에 봉하여졌으며, 1470년(성종 1) 관례에 따라 승헌대부에 올랐으나 이때부터 병이 있어 늘 약으로 지탱하다가 1473년 43세로 죽었다.
성품이 단아, 인자하였으며 경사(經史)를 두루 섭렵하여 일찍이 세조가 강목(綱目)에 대하여 물었을 때 답변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아들이 없어 옥산군(玉山君) 이제(李躋)의 아들 이순(李揗)으로 입후(立後)하게 하였다. 시호는 이도(夷悼)이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世祖實錄
世祖實錄
[집필자]
이순구(李舜九)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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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