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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효원(黃孝源)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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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영(子永)
호(號)소원(少原)
시호(諡號)양평(襄平)
생년1414(태종 14)
졸년1481(성종 12)
시대조선전기
본관상주(尙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황사간(黃士幹)
공신호좌익공신(佐翼功臣)
공신호좌리공신(佐理功臣)

[상세내용]

황효원(黃孝源)
1414년(태종 14)∼1481년(성종 12).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자영(子永), 호는 소원(少原). 증좌찬성 황사간(黃士幹)의 아들이다.

1444년(세종 26) 식년문과에 장원하여 예빈시주부가 되고, 예조좌랑좌헌납이조정랑을 역임하였다.

1453년(단종 1) 검상을 거쳐 사인에 승진되고, 1454년 사복시윤(司僕寺尹)에 승진되었다.

1455년(세조 1) 수양대군(首陽大君: 뒤의 세조)의 즉위에 협력한 공으로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에 책록되고, 이듬해 이조참의에 승진되었다.

1457년 호조참판에 승진되고 상산군(商山君)에 봉하여졌다.

1458년 대사헌이 되고 이어 형조참판을 거쳐 충청도도관찰사로 나갔으며, 이듬해 예조참판이 되었다가 경기도관찰사로 나갔다.

1460년 한성부윤, 1467년 강원도관찰사가 되었다.

1470년(성종 1) 우참찬이 되고, 1471년 성종의 즉위를 보좌한 공으로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이 되었다.

성질이 가혹하고 각박하여 수령을 종처럼 대하고 가정을 다스림에 법도가 없어 처첩을 자주 갈아서 종신토록 소송이 그치지 않았으며, 또 재화를 탐하여 당시 화가옹(貨家翁)이라 불렸다. 시호는 양평(襄平)이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世祖實錄
成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이재호(李載浩)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