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녕대군(讓寧大君)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4C591B155B300B1394X0 |
이명(異名) | 이제(李禔) |
이명(異名) | 이제(李褆) |
자(字) | 후백(厚伯) |
시호(諡號) | 강정(剛靖) |
생년 | 1394(태조 3) |
졸년 | 1462(세조 8)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왕실 > 왕자 |
모 | 여흥민씨(驪興閔氏) |
처 | 광주김씨(光州金氏) |
처부 | 김한로(金漢老) |
외조부 | 민제(閔霽) |
[상세내용]
양녕대군(讓寧大君)
1394년(태조 3)∼1462년(세조 8). 태종의 장남. 전주이씨(全州李氏). 이름은 이제(李禔)(주1)
, 자는 후백(厚伯). 모친은 여흥민씨(驪興閔氏)로 민제(閔霽)의 딸이며, 부인은 광주김씨(光州金氏)로 김한로(金漢老)의 딸이다.
1404년(태종 4)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유분방한 성품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왕세자로서 지녀야 할 예의범절이라든가, 혹은 딱딱한 유교적인 교육, 그리고 엄격한 궁중생활 등에 대하여 잘 적응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그는 남몰래 궁중을 벗어나서 사냥을 한다든가 하는 자유분방한 풍류생활을 더 즐겼다.
이와같은 그의 품행은 부왕인 태종의 눈에도 걱정스럽게 비쳤음은 물론, 엄격한 유학자들의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태종은 수차에 걸쳐 그에게 군왕으로서 지녀야 할 덕행을 닦도록 타이르기도 하고, 때로는 심한 벌을 주기도 하였으나, 그는 끝내 그런 부왕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결국 1418년에 유정현(柳廷顯) 등의 청원으로 폐위되고, 왕세자의 지위에는 그의 동생이며, 뒷날 세종이 된 충녕대군(忠寧大君)이 책봉되었다.
그런데 그가 왜 그러한 파격적인 행동을 하였으며, 또한 왜 세자의 지위를 잃게 되었는지 아직까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그의 동생인 세종이 즉위한 뒤에도 세종과 극히 우애가 깊었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과거의 왕세자였다는 것, 현왕이 그의 동생이라는 것 때문에 그의 일거일동은 세밀한 관찰의 대상이 되어 번번이 그것도 수십 차례에 걸쳐 탄핵된 바 있었지만, 세종의 각별한 배려로 처벌을 받은 적은 없었다.
이러한 그의 특이한 생애는 많은 후세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듯하며, 그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도 전해지는 것이 적지 않다.
특히 시와 서에 능하였다.
이명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紀略)』(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K2-1036]) 권3, [太宗大王內外子孫錄](1쪽)에는 성명이 "이제(李褆)"로, 『선원록(璿源錄)』(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K2-1047]) 권13, [太宗大王宗親錄](1쪽)에는 "이제(李禔)"로 나옴. |
1404년(태종 4)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유분방한 성품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왕세자로서 지녀야 할 예의범절이라든가, 혹은 딱딱한 유교적인 교육, 그리고 엄격한 궁중생활 등에 대하여 잘 적응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그는 남몰래 궁중을 벗어나서 사냥을 한다든가 하는 자유분방한 풍류생활을 더 즐겼다.
이와같은 그의 품행은 부왕인 태종의 눈에도 걱정스럽게 비쳤음은 물론, 엄격한 유학자들의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태종은 수차에 걸쳐 그에게 군왕으로서 지녀야 할 덕행을 닦도록 타이르기도 하고, 때로는 심한 벌을 주기도 하였으나, 그는 끝내 그런 부왕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결국 1418년에 유정현(柳廷顯) 등의 청원으로 폐위되고, 왕세자의 지위에는 그의 동생이며, 뒷날 세종이 된 충녕대군(忠寧大君)이 책봉되었다.
그런데 그가 왜 그러한 파격적인 행동을 하였으며, 또한 왜 세자의 지위를 잃게 되었는지 아직까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그의 동생인 세종이 즉위한 뒤에도 세종과 극히 우애가 깊었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과거의 왕세자였다는 것, 현왕이 그의 동생이라는 것 때문에 그의 일거일동은 세밀한 관찰의 대상이 되어 번번이 그것도 수십 차례에 걸쳐 탄핵된 바 있었지만, 세종의 각별한 배려로 처벌을 받은 적은 없었다.
이러한 그의 특이한 생애는 많은 후세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듯하며, 그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도 전해지는 것이 적지 않다.
특히 시와 서에 능하였다.
[참고문헌]
太宗實錄
世宗實錄
燃藜室記述
國朝人物志
世宗實錄
燃藜室記述
國朝人物志
[집필자]
정두희(鄭杜熙)
대표명 | 양녕대군(讓寧大君) |
명 | 제(禔), 제(褆) |
봉호 | 양녕(讓寧), 양녕대군(禳寧大君), 양녕대군(讓寧大君), 양녕대군(讓寕大君), 양녕대군(譲寧大君), 양녕대군(譲寕大君), 양녕대군제(讓寧大君禔), 양녕대군제(讓寧大君褆) |
시호 | 강정(剛靖) |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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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