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鄭淵)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815C5F0FFFFB1389X0 |
자(字) | 중심(仲深) |
호(號) | 송곡(松谷) |
시호(諡號) | 정숙(貞肅) |
생년 | 1389(창왕 1) |
졸년 | 1444(세종 26)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영일(迎日)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정홍(鄭洪) |
[상세내용]
정연(鄭淵)
1389년(창왕 1)∼1444년(세종 26).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중심(仲深), 호는 송곡(松谷).
정홍(鄭洪)의 아들이며, 안평대군 용(瑢)의 장인이다.
1405년(태종 5) 생원시에 합격하고, 음보(蔭補)로 지평에 재직중 당시 수상(首相)이던 하륜(河崙)을 탄핵한 일로 순금사(巡禁司)에 내려져 국문을 받았으나 속죄되어 풀려났다.
도관(都官)‧정랑을 거쳐 종부시소윤(宗簿寺少尹)에 오르고, 1420년(세종 2) 다시 장령이 되었을 때 상왕(上王: 태종)이 철원에 가려는 것을 간하다가 진산에 유배되었다.
1424년 다시 장령이 되고, 이어 선공감정‧집의‧동부대언, 형조‧이조‧병조의 참판을 지냈다.
1430년 천추사로 명나라에 다녀와 인순부윤(仁順府尹)‧중추원사, 형조‧병조의 판서를 지냈으며, 1442년 사은 겸 주문사(謝恩兼奏聞使)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시호는 정숙(貞肅)이다.
정홍(鄭洪)의 아들이며, 안평대군 용(瑢)의 장인이다.
1405년(태종 5) 생원시에 합격하고, 음보(蔭補)로 지평에 재직중 당시 수상(首相)이던 하륜(河崙)을 탄핵한 일로 순금사(巡禁司)에 내려져 국문을 받았으나 속죄되어 풀려났다.
도관(都官)‧정랑을 거쳐 종부시소윤(宗簿寺少尹)에 오르고, 1420년(세종 2) 다시 장령이 되었을 때 상왕(上王: 태종)이 철원에 가려는 것을 간하다가 진산에 유배되었다.
1424년 다시 장령이 되고, 이어 선공감정‧집의‧동부대언, 형조‧이조‧병조의 참판을 지냈다.
1430년 천추사로 명나라에 다녀와 인순부윤(仁順府尹)‧중추원사, 형조‧병조의 판서를 지냈으며, 1442년 사은 겸 주문사(謝恩兼奏聞使)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시호는 정숙(貞肅)이다.
[참고문헌]
太宗實錄
世宗實錄
燃藜室記述
淸選考
世宗實錄
燃藜室記述
淸選考
[집필자]
박천규(朴天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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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