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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기(李堅基)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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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이견기(李堅起)
자(字)필휴(匹休)
호(號)남정(南亭)
시호(諡號)안성(安成)
생년1384(우왕 10)
졸년1455(단종 3)
시대조선전기
본관성주(星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수(李穗)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견기(李堅基)
1384년(우왕 10)∼1455년(단종 3).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필휴(匹休), 호는 남정(南亭). 일명 이견기(李堅起).

총제(摠制) 이수(李穗)의 아들이다.

1419년(세종 1)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우정언지평장령을 역임하였다.

1432년에는 사헌부집의로 있으면서 조말생(趙末生)이 탐오한 신하라고 하여 그의 등용을 막는 상소를 올렸다.

1433년에 군기감판사(軍器監判事)를 거쳐서 동부승지우부승지좌부승지우승지좌승지를 역임하였고, 1441년에 충청도도관찰사, 1444년에 공조참판, 1445년에 예문관제학, 1446년에 판한성부사지중추원사를 역임하였다.

같은해에 성절사(聖節使)로서 주문사(奏聞使) 김하(金何)와 함께 명나라에 갔다가 다음해에 돌아왔다. 명나라에서 돌아온 뒤 호조판서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450년(문종 즉위)에는 각종 방물(方物)을 가지고 사은사북경에 다녀왔고, 그해 우참찬이 되었다가 1452년(단종 즉위)에는 호조판서가 되었다.

1453년 늙었음을 이유로 사직하려고 하였으나 다시 중추원사가 되었다. 그가 죽자 나라에서는 2일 동안 조회를 정지하고 관곽(棺槨)과 종이 100권을 부의(賻儀)로 내렸다. 시호는 안성(安成)이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文宗實錄
端宗實錄
國朝榜目
大東韻府群玉

[집필자]

원영환(元永煥)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