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신인손(辛引孫)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2E0C778C190B1384X0
자(字)조윤(祚胤)
호(號)석천(石泉)
시호(諡號)공숙(恭肅)
생년1384(우왕 10)
졸년1445(세종 27)
시대조선전기
본관영산(靈山)
활동분야문신 > 문신
신유정(辛有定)
외조부설숭(薛崇)

[상세내용]

신인손(辛引孫)
1384년(우왕 10)∼1445년(세종 27).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영산(靈山). 자는 조윤(祚胤), 호는 석천(石泉).

부친은 신유정(辛有定)이고, 모친은 설숭(薛崇)의 딸이다.

1408년(태종 8) 식년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여 벼슬이 병조판서대제학에까지 올랐다. 처음 사관(史官)에 보임되고, 1413년에 승정원주서에 전임되어 항상 여러 대군(大君)과 함께 경전(經典)과 사기(史記)를 강론하였다. 세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그를 각별히 대접하여 난죽(蘭竹)병풍을 친히 그려주었다.

이어 예조정랑에 오르고 1420년(세종 2)에 사인(舍人), 1428년에 집의(執義), 1430년에 종부시판사 겸 형조지사, 1432년에 좌사간대부(左司諫大夫)가 되고, 곧 형조우참의, 다시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1434년에 병조좌참의가 되고 이내 승정원우승지를 거쳐 도승지에 승진하였다.

1438년에 병조참판, 1444년에 한성부판사병조판서에 이르렀다.

1445년에 예문관대제학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취임하지 못하였고, 모친상을 당하여 슬퍼한 나머지 몸이 쇠약해지고 병도 깊어 62세로 죽었다. 성질이 강직하고 아첨하지 못하며, 남의 과실을 보면 참지 못하고 기탄없는 말로 내치었다. 글씨에도 뛰어났다. 시호는 공숙(恭肅)이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이재룡(李載龒)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