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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맹균(李孟畇)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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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사원(士原)
호(號)한재(漢齋)
시호(諡號)문혜(文惠)
생년1371(공민왕 20)
졸년1440(세종 22)
시대조선전기
본관한산(韓山)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종덕(李種德)
조부이색(李穡)

[상세내용]

이맹균(李孟畇)
1371년(공민왕 20)∼1440년(세종 22).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사원(士原), 호는 한재(漢齋).

이색(李穡)의 손자이며,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이종덕(李種德)의 아들이다.

13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385년(우왕 11)에 문과에 합격하여, 성균직학(成均直學)사재소감(司宰少監)내서사인(內書舍人)‧지단양군사(知丹陽郡事)‧예문관직제학을 지냈다.

1406년(태종 6)에는 사헌부집의로 있으면서 사송(司訟)을 계류(稽留)한 죄로 원주에 유배되었다가 사면된 뒤 지영천군사(知永川郡事)지승문원사(知承文院事)판승문원사(判承文院事)성균관대사성좌사간예조참의경승부윤(敬承府尹)충청도관찰사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역임하였다.

1421년(세종 3)에 사은부사(謝恩副使)명나라에 다녀와서 예조참판경기도관찰사공조판서예조판서를 지냈다.

1425년에는 진위사(陳慰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서 이조병조 판서를 지냈다.

1427년에는 좌빈객(左賓客)이 되어 세자를 가르쳤고, 그뒤 의정부참찬대사헌이조판서예문관대제학을 역임하였다.

1429년 사은부사북경에 갔다가 다음해 돌아와서 의정부참찬이 된 뒤 성균관대사성판한성부사이조판서예문관대제학을 지냈으며, 1437년 예문관대제학 겸 판이조사(藝文館大提學兼判吏曹事)가 되니 판이조사를 겸하는 것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뒤 우찬성판이조사판의주목사좌찬성을 역임하였다.

1440년에 부인 이씨의 질투가 심하여 종을 죽인 사건으로 파면당하여 황해도 우봉현(牛峰縣)에 폄출(貶黜)되었다가, 귀양갔던 곳에서 돌아오는 길에 개성부에서 70세로 죽었다.

글씨와 시문에 뛰어났다. 시호는 문혜(文惠)이다.

[참고문헌]

太祖實錄
太宗實錄
世宗實錄
韓山李氏世譜
筆苑雜記
慵齋叢話

[집필자]

원영환(元永煥)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