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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회백(姜淮伯)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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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백보(伯父)
호(號)통정(通亭)
생년1357(공민왕 6)
졸년1402(태종 2)
시대조선전기
본관진주(晉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강시(姜蓍)
저서『통정집』
공신호추충협보공신(推忠協輔功臣)

[상세내용]

강회백(姜淮伯)
1357년(공민왕 6)∼1402년(태종 2). 고려말과 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백보(伯父), 호는 통정(通亭).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강시(姜蓍)의 아들이다.

1376년(우왕 2) 문과에 급제, 성균좨주가 되었으며, 밀직사제학부사첨서사사(簽書司事)를 역임하였다.

1385년에는 밀직부사로서 사신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388년 창왕이 즉위하자 밀직사로 부사 이방우(李芳雨)와 함께 명나라에 다녀왔다.

뒤에 창왕을 폐할 때 지밀직(知密直) 윤사덕(尹師德)과 함께 부고(府庫)를 봉한 공이 있어, 1389년 공양왕이 즉위하자 추충협보공신(推忠協輔功臣)의 호를 받았다. 이 해에 조준(趙浚) 등과 함께 세자사부에 임명되었으나 나이 어린 것을 이유로 사퇴하였다. 이어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이조판서를 겸임하였다. 이 때 상소하여 불교의 폐해를 논하고 한양천도를 중지하게 하였으며, 이어 교주‧강릉도도관찰출척사(交州江陵道都觀察黜陟使)로 나갔다. 돌아와 정당문학 겸 사헌부대사헌(政堂文學兼司憲府大司憲)이 되었다. 이때 정몽주(鄭夢周)의 사주를 받은 간관 김진양(金震陽) 등이 조준정도전(鄭道傳) 등을 탄핵할 때 이에 동조, 대관을 거느리고 상소하였다. 1392년 정몽주가 살해당하자 처음에는 동생인 강회계(姜淮季)공양왕의 사위였기 때문에 탄핵을 면하였으나, 곧 진양(晉陽)에 유배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뒤 1398년(태조 7) 동북면도순문사(東北面都巡問使)가 되었다.

저서로는 『통정집』이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太宗實錄
大東野乘
新增東國輿地勝覽

[이미지]

[집필자]

손홍렬(孫弘烈)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