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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귀령(沈龜齡)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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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천석(天錫)
호(號)병담(屛潭)
시호(諡號)정양(靖襄)
생년1350(충정왕 2)
졸년1413(태종 13)
시대조선전기
본관풍산(豊山)
활동분야무신 > 무신
심승경(沈承慶)
공신호좌명공신(佐命功臣)

[상세내용]

심귀령(沈龜齡)
1350년(충정왕 2)∼1413년(태종 13). 고려말 조선 초기의 무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천석(天錫), 호는 병담(屛潭).

전농시사(典農寺事) 심승경(沈承慶)의 아들이다.

일찍이 무예훈련에 힘써 솜씨가 인정되자 이방원(李芳遠)을 호종하였다.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 때 박원길(朴元吉)정도전(鄭道傳) 등을 제거하는 데 공을 세웠다.

그뒤 1400년(정종 2) 제2차 왕자의 난 때에도 상장군(上將軍)으로서 이방원을 호종하여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에 책록되었고 풍천군(豊川君)에 봉해졌다.

1406년(태종 6) 겸중군동지총제(兼中軍同知摠制)가 되었고 이어서 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에 임명되어 당시 남해안일대에 왜구가 침입하자 조전절제사(助戰節制使)로서 왜구격퇴에 큰 공을 세웠다.

그뒤 천추사(千秋使)로서 명나라에 다녀왔고 부진무(副鎭撫)겸동지의흥부사(兼同知義興府事)를 역임하였다.

그런데 1410년 군령과 군기관리의 소홀이라는 혐의로 대간에 의하여 탄핵, 파직되기도 하였으나 국왕의 신임이 두터워 이듬해에는 오히려 지의흥부사로 승진하였다. 이어서 별시위 일번절제사(別侍衛一番節制使)를 역임하였고, 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에 이르렀다.

성품이 강직하고 사어(射御)에 능하여 일찍부터 태종을 호종하였다. 신분은 비록 미천하였으나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자신의 직임을 잘 알았으며, 부하들에 대한 통솔력도 매우 뛰어났다. 시호는 정양(靖襄)이다.

[참고문헌]

太祖實錄
定宗實錄
太宗實錄
新增東國輿地勝覽
韓國系行譜

[집필자]

최완기(崔完基)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