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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생(沈孝生)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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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349(충정왕 1)
졸년1398(태조 7)
시대조선전기
본관부유(富有)
활동분야문신 > 문신
심인립(沈仁立)
유씨(柳氏)
출신지전주
공신호개국공신

[상세내용]

심효생(沈孝生)
1349년(충정왕 1)∼1398년(태조 7). 고려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부유(富有). 전주 출신. 지금주사(知錦州事) 심인립(沈仁立)의 아들이며, 태조의 세자인 방석(芳碩)의 장인이다.

1380년(우왕 6) 성균시(成均試)에 합격하고, 1383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고려이성계(李成桂)에게 귀의하면서부터 점차 현직(顯職)에 올라 1391년(공양왕 3)에 문하시중(門下侍中) 이성계의 휘하에서 문하사인(門下舍人)이 되었고, 조선왕조 개창 직전인 1392년 6월에 사헌부장령이 되었다. 같은해 7월에 이성계를 추대하여 개국공신 3등에 올랐으며, 사헌중승(司憲中丞)이 되고, 이어 경상도안렴사(慶尙道按廉使)를 거쳐 중추부사(中樞副使)가 되었다.

1394년(태조 3)에는 대장군(大將軍)첨절제사(僉節制使)를 각각 겸하여 왕화(王和)왕거(王琚)를 안동옥(安東獄)에 연계(連繫)하고, 거제도에서 왕우(王瑀)부자의 제사를 지내는 등 고려 왕족의 세력을 견제하였다.

같은해 10월에는 딸이 세자 방석의 빈(嬪)이 되면서 이조전서(吏曹典書)에 올랐고, 아내인 유씨(柳氏)정경옹주(貞慶翁主)에 봉해졌다.

이듬해에는 중추원학사가 되었으며, 1397년에는 정도전(鄭道傳)남은(南誾) 등과 함께 군사권을 장악하여 공료정책(攻遼政策)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같은해에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로서 태조의 서경궁(西京宮) 경영계획을 반대하여 그치게 하였다.

그뒤 예문관대제학이 되고, 부성군(富城君)에 봉해졌다.

1398년 8월 무인정사(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남은 등과 함께 세자 방석파로 지목되어 방원(芳遠)에 의하여 죽음을 당하였다. 그는 특히 정교한 병기의 제조에 능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高麗史
太祖實錄
國朝人物考

[집필자]

이근수(李根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