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안중(韓安中)
[상세내용]
한안중(韓安中)
생졸년 미상. 본관은 단주(湍州).
호부시랑(戶部侍郞) 한규(韓圭)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동생은 평장사(平章事) 한안인(韓安仁)이다.
한안중(韓安中) 한안인 측과 이자겸 측은 대립 세력이었는데, 1122년 인종이 즉위하자 이자겸(李資謙) 일당은 음모를 꾸며서 선왕(先王), 즉 예종(睿宗)의 측근들에게 반역죄를 뒤집어 씌웠는데 당시에 대방공(帶方公) 왕보(王俌) 등의 무리들을 죽이거나 유배시켰다. 이때 상서우승(尙書右丞)이었던 한안중은 동생 한안인과 함께 연좌되어 유배되었다가, 한안인은 승주(昇州:지금의 순천) 감물도(甘勿島:지금 돌산현)에 유배되었다가 수장(水葬)당했다.
1127년(인종 5)에 이자겸이 패하게 되면서 유배 중이었던 한안중은 유배에서 풀려난 후 다시 관직이 회복되어, 상서우승(尙書右丞)에 이르게 되었다.
동생 한안인은 이자겸이 패망한 후 문열(文烈)이란 시호를 받았다.
호부시랑(戶部侍郞) 한규(韓圭)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동생은 평장사(平章事) 한안인(韓安仁)이다.
한안중(韓安中) 한안인 측과 이자겸 측은 대립 세력이었는데, 1122년 인종이 즉위하자 이자겸(李資謙) 일당은 음모를 꾸며서 선왕(先王), 즉 예종(睿宗)의 측근들에게 반역죄를 뒤집어 씌웠는데 당시에 대방공(帶方公) 왕보(王俌) 등의 무리들을 죽이거나 유배시켰다. 이때 상서우승(尙書右丞)이었던 한안중은 동생 한안인과 함께 연좌되어 유배되었다가, 한안인은 승주(昇州:지금의 순천) 감물도(甘勿島:지금 돌산현)에 유배되었다가 수장(水葬)당했다.
1127년(인종 5)에 이자겸이 패하게 되면서 유배 중이었던 한안중은 유배에서 풀려난 후 다시 관직이 회복되어, 상서우승(尙書右丞)에 이르게 되었다.
동생 한안인은 이자겸이 패망한 후 문열(文烈)이란 시호를 받았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東史綱目
朝鮮人名辭書
高麗史節要
東史綱目
朝鮮人名辭書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