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靜妃)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22C815BE44FFFFD1345X0 |
시호(諡號) | 정비(靜妃) |
생년 | ?(미상) |
졸년 | 1345(충목왕 1) |
시대 | 고려후기 |
본관 | 개성(開城) |
활동분야 | 왕실 > 비빈 |
부 | 왕영(王瑛) |
[상세내용]
정비(靜妃)
미상∼1345년(충목왕 1). 고려 제26대 충선왕의 제3비. 고려 제20대왕 신종의 증손 서원후(西原侯) 왕영(王瑛)의 딸이다.
서원후의 누이 1명은 충렬왕에게 출가하여 정신부주(貞信府主)가 되었고, 서원후의 딸은 충렬왕의 아들인 충선왕과 혼인하여 고려왕실 족내혼이 원 간섭기까지 계속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충선왕과 정비와의 혼인은 충선왕의 개인의사가 크게 반영된 것이었다. 충렬왕비이며 충선왕의 모후인 제국대장공주가 원나라에 다녀오기 위하여 공녀를 차출하였는데, 그 가운데 서원후의 딸 정비가 포함되어 있었다.
세자가 모후와 함께 원나라로 가는 도중에 온천에서 유숙하는데 세자의 안색이 좋지 못하므로 그 연고를 물으니, “내가 장차 서원후의 딸에게 장가들려 하였는데 지금 뽑힌 공녀에 들어 있어 마음이 좋지 않다.”고 하므로, 이 사실을 알게 된 공주가 곧 서원후의 딸을 되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은 2년 뒤인 1289년(충렬왕 15) 15세의 나이로 충선왕은 정비를 세자비로 맞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원나라의 간섭기이므로 원나라의 공주가 아니면 왕의 제1비가 될 수 없었으므로, 정비는 충선왕과 제일 먼저 혼인하고도 원나라 공주출신 왕비들에 이어 제3비로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동성 근친혼은 원나라 세조의 비난으로 연결되어 충선왕은 복위교서에서 동성금혼령을 선포하고, 대신 왕실과 통혼할 수 있는 15개 가문의 재상지종(宰相之宗)을 선정하였다. 시호는 정비이다.
서원후의 누이 1명은 충렬왕에게 출가하여 정신부주(貞信府主)가 되었고, 서원후의 딸은 충렬왕의 아들인 충선왕과 혼인하여 고려왕실 족내혼이 원 간섭기까지 계속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충선왕과 정비와의 혼인은 충선왕의 개인의사가 크게 반영된 것이었다. 충렬왕비이며 충선왕의 모후인 제국대장공주가 원나라에 다녀오기 위하여 공녀를 차출하였는데, 그 가운데 서원후의 딸 정비가 포함되어 있었다.
세자가 모후와 함께 원나라로 가는 도중에 온천에서 유숙하는데 세자의 안색이 좋지 못하므로 그 연고를 물으니, “내가 장차 서원후의 딸에게 장가들려 하였는데 지금 뽑힌 공녀에 들어 있어 마음이 좋지 않다.”고 하므로, 이 사실을 알게 된 공주가 곧 서원후의 딸을 되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은 2년 뒤인 1289년(충렬왕 15) 15세의 나이로 충선왕은 정비를 세자비로 맞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원나라의 간섭기이므로 원나라의 공주가 아니면 왕의 제1비가 될 수 없었으므로, 정비는 충선왕과 제일 먼저 혼인하고도 원나라 공주출신 왕비들에 이어 제3비로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동성 근친혼은 원나라 세조의 비난으로 연결되어 충선왕은 복위교서에서 동성금혼령을 선포하고, 대신 왕실과 통혼할 수 있는 15개 가문의 재상지종(宰相之宗)을 선정하였다. 시호는 정비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고려시대의 后妃(정용숙, 民音社, 1992)
高麗史節要
고려시대의 后妃(정용숙, 民音社, 1992)
[집필자]
정용숙(鄭容淑)
대표명 | 정비(靜妃) |
봉호 | 정비(靜妃) |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