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비(安妃)
[상세내용]
안비(安妃)
생졸년 미상. 고려 제32대 우왕의 제5비. 삼사판사(三司判事) 강인유(姜仁裕)의 딸이다.
강인유는 공민왕 때부터 찬성사를 지내고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원로중신의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도 이 혼인은 자의가 아닌 우왕의 강요에 의하여 맺어지게 되었다. 우왕은 강인유가 사위를 맞아들인다는 말을 듣고 그 집으로 달려가 딸을 빼앗아 와서 정비궁(正妃宮)에 두고 하루 종일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았으며 사람들의 조하(朝賀)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11개월 후에 안비로 봉하였다. 이로 인하여 딸을 가진 사람들은 두려워하여 모두 혼례도 갖추지 않고 가만히 사위를 맞아들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무리한 방법의 혼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왕이 폐출된 이후의 왕비와 왕비 집안은 대간(臺諫)의 공격 대상이 되었고, 왕비는 사가로 축출되고 왕비의 아버지인 강인유는 풍주(豊州)로 유배되는 비운을 맞았다.
한편, 우왕과 창왕은 신돈(辛旽)의 후손이라 하여 위조(僞朝)로 폄하됨에 따라 우왕은 반역열전에 수록되고 왕비들은 『고려사』 후비전에 입전되지 못하였다.
강인유는 공민왕 때부터 찬성사를 지내고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원로중신의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도 이 혼인은 자의가 아닌 우왕의 강요에 의하여 맺어지게 되었다. 우왕은 강인유가 사위를 맞아들인다는 말을 듣고 그 집으로 달려가 딸을 빼앗아 와서 정비궁(正妃宮)에 두고 하루 종일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았으며 사람들의 조하(朝賀)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11개월 후에 안비로 봉하였다. 이로 인하여 딸을 가진 사람들은 두려워하여 모두 혼례도 갖추지 않고 가만히 사위를 맞아들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무리한 방법의 혼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왕이 폐출된 이후의 왕비와 왕비 집안은 대간(臺諫)의 공격 대상이 되었고, 왕비는 사가로 축출되고 왕비의 아버지인 강인유는 풍주(豊州)로 유배되는 비운을 맞았다.
한편, 우왕과 창왕은 신돈(辛旽)의 후손이라 하여 위조(僞朝)로 폄하됨에 따라 우왕은 반역열전에 수록되고 왕비들은 『고려사』 후비전에 입전되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고려시대의 后妃(정용숙, 民音社, 1992)
高麗史節要
고려시대의 后妃(정용숙, 民音社, 1992)
[집필자]
정용숙(鄭容淑)
대표명 | 안비(安妃) |
봉호 | 강안비(姜安妃) |
봉호 : "강안비(姜安妃)"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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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