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우(金汝盂)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5ECB9F9U9999X0 |
시호(諡號) | 충선(忠宣)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고려후기 |
본관 | 부령(扶寧)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구(金坵) |
[상세내용]
김여우(金汝盂)
생졸년 미상. 본관은 부령(扶寧), 부안(扶安).
부친은 문정(文貞) 김구(金坵)이다.
고려 때 형부상서(刑部尙書),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를 역임하고 봉익대부(奉翊大夫)가 되었다. 충렬왕이 세자(世子)일 때 그를 모시고 원(元)나라에 들어가 보필하였다. 이후 충렬왕이 왕위에 오를 때 단권(丹券)을 받았다. 유교의 진흥에 힘써 동생 강릉안렴사(江陵按廉使) 김승인(金承印)에게 학교를 세우도록 권하여 강릉(江陵)의 서쪽 화부산(花浮山)의 현적암(峴滴巖) 아래에 문묘(文廟)를 짓고 우리 나라 최초의 향교(鄕校)를 세웠다. 시호는 충선(忠宣)이다.
부친은 문정(文貞) 김구(金坵)이다.
고려 때 형부상서(刑部尙書),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를 역임하고 봉익대부(奉翊大夫)가 되었다. 충렬왕이 세자(世子)일 때 그를 모시고 원(元)나라에 들어가 보필하였다. 이후 충렬왕이 왕위에 오를 때 단권(丹券)을 받았다. 유교의 진흥에 힘써 동생 강릉안렴사(江陵按廉使) 김승인(金承印)에게 학교를 세우도록 권하여 강릉(江陵)의 서쪽 화부산(花浮山)의 현적암(峴滴巖) 아래에 문묘(文廟)를 짓고 우리 나라 최초의 향교(鄕校)를 세웠다. 시호는 충선(忠宣)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집필자]
김은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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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