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찬(姜師贊)
[상세내용]
강사찬(姜師贊)
생졸년 미상. 본관은 진주(晉州).
1369년(고려 공민왕 18)에 명나라 태조(太祖)가 부보랑(符寶郞) 설사(偰斯)를 고려로 보내어 명나라가 천하를 평정하였음을 알리는 새서(璽書)와 공민왕을 왕으로 봉하며 금인(金印)을 내린 일이 있었다. 이에 고려에서는 1370년(고려 공민왕 19)에 그 답례로 강사찬(姜師贊)을 삼사좌사(三司左使)에 임명하여 책명(冊命)에 대해 사의를 표하게 하고, 이전에 원나라가 보내준 금인(金印)을 바치게 하였다. 이 때 탐라(耽羅)가 고려의 영토임을 밝히고, 말은 제주의 토착민이 기르게 하고, 말을 기르던 몽고인들은 고려의 양민으로 삼게 할 것을 아뢰었는데, 이는 원나라의 지배가 미쳤던 지역을 자국영토로 삼으려는 것으로, 명나라에 대해 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명나라 태조에게 여러 음악에 정통하고 기예에 뛰어난 악공(樂工)의 파견을 요청하였는데, 명 태조는 악기는 제공하였으나, 악공을 파견하는 대신 고려 태상시(太常寺)의 악공을 명나라 서울에 보내어 음악을 익히라고 답을 하였다.
1369년(고려 공민왕 18)에 명나라 태조(太祖)가 부보랑(符寶郞) 설사(偰斯)를 고려로 보내어 명나라가 천하를 평정하였음을 알리는 새서(璽書)와 공민왕을 왕으로 봉하며 금인(金印)을 내린 일이 있었다. 이에 고려에서는 1370년(고려 공민왕 19)에 그 답례로 강사찬(姜師贊)을 삼사좌사(三司左使)에 임명하여 책명(冊命)에 대해 사의를 표하게 하고, 이전에 원나라가 보내준 금인(金印)을 바치게 하였다. 이 때 탐라(耽羅)가 고려의 영토임을 밝히고, 말은 제주의 토착민이 기르게 하고, 말을 기르던 몽고인들은 고려의 양민으로 삼게 할 것을 아뢰었는데, 이는 원나라의 지배가 미쳤던 지역을 자국영토로 삼으려는 것으로, 명나라에 대해 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명나라 태조에게 여러 음악에 정통하고 기예에 뛰어난 악공(樂工)의 파견을 요청하였는데, 명 태조는 악기는 제공하였으나, 악공을 파견하는 대신 고려 태상시(太常寺)의 악공을 명나라 서울에 보내어 음악을 익히라고 답을 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東史綱目
增補文獻備考
朝鮮人名辭書
東史綱目
增補文獻備考
朝鮮人名辭書
[집필자]
이승민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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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