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중선(洪仲宣)
[상세내용]
홍중선(洪仲宣)
미상∼1379년(우왕 5). 고려의 문신. 본명은 중원(仲元).
충혜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내부부령(內府副令)이 되고, 1354년(공민왕 3) 전법판서(典法判書)를 거쳐 1356년 한양부윤으로 재직 중 충혜왕의 서자 석기(釋器)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었다 하여 파직당하였다.
1371년 총부상서(摠部尙書)에 임명되어 명나라에 천추사(千秋使)로 파견되었으며, 판개성부사를 거쳐 1376년(우왕 2)에는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과거를 주관하였고 이듬해 문하찬성사 상의(門下贊成事商議)에 올라 우왕이 서연(書筵)을 개최하자 권중화(權仲和)와 함께 그 사부(師傅)가 되었다.
그뒤 이인임(李仁任)‧임견미(林堅味) 등과 정방(政房)에 있었는데, 이들에게 배척되어 계품사(啓稟使)로 명나라에 가게 되었으나 길이 막혀 즉시 떠나지 못하였다.
이때 사원(私怨)이 있던 간관(諫官) 서균형(徐均衡) 등이 탄핵하여 의령에 유배되었는데, 1379년 양백연(梁伯淵)의 옥사가 일어나자 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받고 배소에서 살해되고 자녀들은 노비가 되었다.
충혜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내부부령(內府副令)이 되고, 1354년(공민왕 3) 전법판서(典法判書)를 거쳐 1356년 한양부윤으로 재직 중 충혜왕의 서자 석기(釋器)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었다 하여 파직당하였다.
1371년 총부상서(摠部尙書)에 임명되어 명나라에 천추사(千秋使)로 파견되었으며, 판개성부사를 거쳐 1376년(우왕 2)에는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과거를 주관하였고 이듬해 문하찬성사 상의(門下贊成事商議)에 올라 우왕이 서연(書筵)을 개최하자 권중화(權仲和)와 함께 그 사부(師傅)가 되었다.
그뒤 이인임(李仁任)‧임견미(林堅味) 등과 정방(政房)에 있었는데, 이들에게 배척되어 계품사(啓稟使)로 명나라에 가게 되었으나 길이 막혀 즉시 떠나지 못하였다.
이때 사원(私怨)이 있던 간관(諫官) 서균형(徐均衡) 등이 탄핵하여 의령에 유배되었는데, 1379년 양백연(梁伯淵)의 옥사가 일어나자 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받고 배소에서 살해되고 자녀들은 노비가 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윤용혁(尹龍爀)
명 : "중선(仲宣)"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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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