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韓康)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D55CAC15FFFFB1228X0 |
이명(異名) | 한경(韓璟) |
시호(諡號) | 문혜(文惠) |
생년 | 1228(고종 15) |
졸년 | 1303(충렬왕 29) |
시대 | 고려후기 |
본관 | 청주(淸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관련정보]
[상세내용]
한강(韓康)
1228년(고종 15)~1303년(충렬왕 29). 고려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초명은 한경(韓璟).
고종 때 과거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감찰어사가 되었다가 금주수(金州守)가 되었다. 금주는 항상 전부(田賦)가 정액(定額)에 미달하여 수령이 많이 파면되었는데 이곳에 부임하여 둔전(屯田)을 경영, 곡식 2,000여석을 얻어 이민(吏民)을 편안하게 하였다.
이 공적으로 예부낭중(禮部郞中)을 제수받고 공부시랑 간의대부(工部侍郞諫議大夫)‧국자대사성 한림학사(國子大司成翰林學士)를 지냈다. 충렬왕 때에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가 되고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옮겼다.
뒤에 찬성사로 치사(致仕)하였다.
충렬왕 때 시무(時務)에 관하여 건의하였는데, 그 내용은 종묘의 향사를 엄격히 할 것, 제사(諸司)의 시물(市物)억매를 금할 것, 사체를 소중히 다룰 것, 살생을 금할 것, 사냥을 그치고 봉양을 절약하여 기갈을 진휼하게 할 것, 『법화경』을 숭상하고 독송할 것 등을 진언하기도 하였다.
시호는 문혜(文惠)이다.
고종 때 과거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감찰어사가 되었다가 금주수(金州守)가 되었다. 금주는 항상 전부(田賦)가 정액(定額)에 미달하여 수령이 많이 파면되었는데 이곳에 부임하여 둔전(屯田)을 경영, 곡식 2,000여석을 얻어 이민(吏民)을 편안하게 하였다.
이 공적으로 예부낭중(禮部郞中)을 제수받고 공부시랑 간의대부(工部侍郞諫議大夫)‧국자대사성 한림학사(國子大司成翰林學士)를 지냈다. 충렬왕 때에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가 되고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옮겼다.
뒤에 찬성사로 치사(致仕)하였다.
충렬왕 때 시무(時務)에 관하여 건의하였는데, 그 내용은 종묘의 향사를 엄격히 할 것, 제사(諸司)의 시물(市物)억매를 금할 것, 사체를 소중히 다룰 것, 살생을 금할 것, 사냥을 그치고 봉양을 절약하여 기갈을 진휼하게 할 것, 『법화경』을 숭상하고 독송할 것 등을 진언하기도 하였다.
시호는 문혜(文惠)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집필자]
문형만(文炯萬)
대표명 | 한강(韓康) |
명 | 강(康) |
명 : "강(康)"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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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