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신(車信)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C28C2E0FFFFU9999X0 |
이명(異名) | 차홀대(車忽䚟)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고려후기 |
본관 | 연안(延安) |
활동분야 | 관료 > 상신 |
[상세내용]
차신(車信)
생졸년 미상. 고려 충렬왕 때의 재상. 본명은 홀대(忽䚟). 본관은 연안(延安).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가 시집올 때 겁령구(怯怜口)로 따라왔다. 본래 고려인이었으나 일찍이 원나라에 잡혀가 연경(燕京: 北京)에서 살았다고 한다. 제국대장공주의 겁령구가 된 것은 그의 어머니가 공주의 유모가 된 데 연유한다.
1277년(충렬왕 3) 원나라에 가서 호피(虎皮)를 바치고 왔으며, 이듬해 충렬왕이 그의 집에 이어(移御)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엄청나게 치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290년에 상장군으로 원나라에 가서 공녀(貢女) 17인을 바치고 돌아왔으며, 그뒤 밀직사를 거쳐 시랑‧찬성사에 올랐다.
1308년(충선왕 즉위) 검교사도자정원사(檢校司徒資政院使)에 올랐다가 곧 첨의찬성사 판의조사(僉議贊成事判儀曹事)에 이르렀다.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가 시집올 때 겁령구(怯怜口)로 따라왔다. 본래 고려인이었으나 일찍이 원나라에 잡혀가 연경(燕京: 北京)에서 살았다고 한다. 제국대장공주의 겁령구가 된 것은 그의 어머니가 공주의 유모가 된 데 연유한다.
1277년(충렬왕 3) 원나라에 가서 호피(虎皮)를 바치고 왔으며, 이듬해 충렬왕이 그의 집에 이어(移御)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엄청나게 치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290년에 상장군으로 원나라에 가서 공녀(貢女) 17인을 바치고 돌아왔으며, 그뒤 밀직사를 거쳐 시랑‧찬성사에 올랐다.
1308년(충선왕 즉위) 검교사도자정원사(檢校司徒資政院使)에 올랐다가 곧 첨의찬성사 판의조사(僉議贊成事判儀曹事)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高麗史
[집필자]
진성규(秦星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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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