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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찬(周英贊)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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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333(충숙왕 후2)
졸년1373(공민왕 22)
시대고려후기
본관함안(咸安)
활동분야문신 > 문관

[상세내용]

주영찬(周英贊)
1333년(충숙왕 후2)∼1373년(공민왕 22).(주1)
생몰년
생년: 초계주씨세보(草溪周氏世譜: 1992) 참고. 졸년: 『고려사』 제44권 공민왕 22년(1373) 기사 "주영찬(周英贊)이 ..1373년(공민왕 22) 10월 신정을 하례 하로 명나라에 가다 영광(靈光)의 자은도(慈恩島)에 이르러 배가 부서져서 물에 빠져 죽다." 참고.
고려 후기의 문관. 초휘는 영옹(英雍). 본관은 함안(咸安). 함안주씨(咸安周氏)의 시조(주2)
초휘 및 본관
초계주씨세보(草溪周氏世譜: 1992)의 "공민왕조에 함안군(咸安君)에 봉해지고, 그 후에 함안주씨(咸安周氏)가 되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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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봉의랑(奉議郞) 주목(周穆), 아버지는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주렴(周濂), 맏형 주사옹(周士雍)은 학사(學士)로 삼계주씨(森溪周氏)의 시조이며, 작은형 주언방(周彦邦)은 전법판서(典法判書)로 장흥주씨(長興周氏)의 시조이다. 부인은 함안이씨(咸安李氏)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이방실(李芳實)의 딸이다(주3)
가계
초계주씨세보(草溪周氏世譜: 1992)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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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3년 판선공시사(判繕工寺事)로서 천추사가 되어 명나라에 가서 천추절을 축하하고 아울러 제주의 목호(牧湖) 초홀독불화(肖忽禿不花)가 진상한 말 19필과 나귀 2필을 바치고 돌아왔다. 주영찬이 명나라에 파견된 이유는 그의 딸이 일찍이 원나라에 들어갔다 명(明)의 군대에게 포로가 되어 뽑혀서 궁중에 들어가 황제의 사랑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주4)
명나라 파견 이유
『고려사』 제44권 공민왕 계축 22년(1373) 기사, "가을 7월 갑진일에 판선공시사(判繕工寺事) 주영찬(周英贊)을 명나라에 보내 천추절을 축하하고 ... 주영찬의 딸이 일찍이 원나라에 들어갔었던바 명나라 군대에게 포로되어 뽑혀서 궁중에 들어가 황제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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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3년에 밀직부사가 되었는데, 다시 이해 정조사가 되어 판선공시사 우인열(禹仁烈) 등과 함께 명나라로 가다가 영광의 자은도(慈恩島) 부근에서 배가 부서져 익사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손홍렬(孫弘烈)
대표명주영찬(周英贊)
성명주영찬(周英贊)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