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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張沆)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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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눌재(訥齋)
시호(諡號)문현(文顯)
생년?(미상)
졸년1353(공민왕 2)
시대고려후기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장항(張沆)
미상∼1353년(공민왕 2). 고려의 문신. 호는 눌재(訥齋). 과거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사헌규정(司憲糾正)이 되었고, 다시 여러 관직을 거쳐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가 되었다.

1320년(충숙왕 7) 당시 상왕이던 충선왕원나라에서 백안독고사(伯顔禿古思)의 참소를 입어 토번(吐蕃)으로 귀양가게 되었는데, 이때 반전(盤纏: 旅費 따위를 말함.)을 가지고 왕에게 나아갔다.

1327년 충숙왕이 참소를 입어 원나라에 5년 동안 억류되어 있었을 때 시종한 공로로 이등공신에 올랐으며 이어 나주목사를 거쳐 군부판서(軍簿判書)가 되었다.

1331년(충혜왕 즉위) 상왕인 충숙왕의 명으로 원나라태의(太醫)를 청하러 간 일이 있다.

그뒤 밀직제학에 임명되고, 아울러 첨의참리 평양윤(僉議參理平壤尹)을 권수(權授)하였으며, 영산군(永山君)에 봉해졌다.

1343년(충혜왕 복위 4) 전민추쇄도감(田民推刷都監)이 설치되면서 제조(提調)에 임명되었고, 1344년 충목왕이 즉위하자 국정에 참의(參議)하였다. 다음해 참리(參理)가 되었고, 그뒤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올랐다.

1348년(충목왕 4) 경사도감(經史都監)제조이학도감판사(吏學都監判事)를 겸임하였다.

1352년 서연관(書筵官)에 임명되었다.

특히, 예학(禮學)에 깊은 조예가 있어서 공민왕의 명을 받아 종묘(宗廟)의 예악(禮樂)과 기복(器服)을 수정하기도 하였다. 시호는 문현(文顯)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이희덕(李熙德)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