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장자온(張子溫)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7A5C790C628D1388X0
생년?(미상)
졸년1388(우왕 14)
시대고려후기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장자온(張子溫)
미상∼1388년(우왕 14). 고려의 문신.

1364년(공민왕 13) 원나라가 반원정책을 추진하던 공민왕을 폐하고 덕흥군(德興君)을 세우자, 왕명으로 이를 해명하러 간 이공수(李公遂)의 수행원으로 갔다 온 뒤 상호군에 제수되었다.

1368년 예의판서(禮儀判書)로서 오왕(吳王: 명나라 태조인 朱元璋)을 방문하였다.

1369년 공부상서(工部尙書)명경(明京)에 가서 신정(新正)을 하례하고, 「본국조하의주(本國朝賀儀注)」를 청하여 다음해 「본국조하의주」 1책을 가지고 돌아와 예부상서에 임명되었다가 곧 진변도호부안무사(鎭邊都護府安撫使)로 전보되었다.

1371년 민부상서(民部尙書)로 명경에 가서 탐라(耽羅)를 토벌할 것을 요청하였고, 이듬해 명나라와의 국교관계가 순조롭지 못하자 민부판서(民部判書)로 정료위(定遼衛)에 가서 앞서 정비(鄭庇)가 명경에 바친 말을 받아들이지 않은 일에 대하여 조사하도록 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돌아왔다.

같은해 주영찬(周英贊)을 대신하여 밀직부사로서 명경에 갔다오고, 다음해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명나라에 가서 조공도로가 개통된 것을 사(謝)하고 관복을 내려줄 것을 청하였다.

1374년(우왕 즉위) 밀직사명경에 가서 공민왕의 부(訃)를 고하고, 시(諡)를 내려줄 것과 승습(承襲)하여 줄 것을 청하였다.

1385년(우왕 11)명나라 사신 주탁(周倬)이 번육(膰肉: 종묘와 사직에 바치는 고기)을 가지고 왔는데, 이에 대한 대접이 소홀하였다 하여 이것을 운반한 밀직부사 구홍(具鴻)을 죽이라고 하였을 때 “홍이 무인이라 예를 잘 알지 못한 탓이다.”라고 변호, 그의 목숨을 구하여 주었다.

같은해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명나라에 가서 사은하고 역서(曆書)를 가지고 돌아왔다.

1388년 첨의찬성사명나라에 사은하러 들어갔다가 고려에서 보낸 말이 열등품이라는 이유로 금의위(錦衣衛)에 갇혀 옥사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강진철(姜晉哲)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