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백상(蔣伯祥)
[상세내용]
장백상(蔣伯祥)
생졸년 미상. 고려 후기에 고려에 들어와 활동하였던 만인(蠻人).
충숙왕 때 정동행성의 이문(理問)과 낭중(郞中)을 지냈으며, 1330년(충숙왕 17) 충숙왕이 퇴위하고 충혜왕이 즉위하자 원나라에 있으면서 입성책동(立省策動)을 벌였다.
1332년(충숙왕 복위 1)에 다시 고려에 돌아와 충숙왕의 복위사실을 알리고 국새(國璽)를 접수하였으며 창고들을 봉쇄하였다.
그리고 곧 정동행성의 사무를 섭행(攝行)하면서 윤석(尹碩)‧손기(孫琦)‧김지경(金之鏡)‧배전(裵佺)‧오자순(吳子淳)‧강서(康庶)‧박련(朴連)‧이군해(李君侅)‧윤환(尹桓) 등 충혜왕의 폐행(嬖幸) 20여명을 장류(杖流)하였다.
그러나 뇌물을 밝히고 권세를 부려 원망을 샀으며, 마침 조적(曺頔) 등 충혜왕 폐행들이 원나라에 소원(訴寃)함으로써 원나라에서 파견된 객성태사(客省太史) 도치(都赤)에 의하여 정동행성에 수감되고 그뒤로는 활동하지 못하였다.
충숙왕 때 정동행성의 이문(理問)과 낭중(郞中)을 지냈으며, 1330년(충숙왕 17) 충숙왕이 퇴위하고 충혜왕이 즉위하자 원나라에 있으면서 입성책동(立省策動)을 벌였다.
1332년(충숙왕 복위 1)에 다시 고려에 돌아와 충숙왕의 복위사실을 알리고 국새(國璽)를 접수하였으며 창고들을 봉쇄하였다.
그리고 곧 정동행성의 사무를 섭행(攝行)하면서 윤석(尹碩)‧손기(孫琦)‧김지경(金之鏡)‧배전(裵佺)‧오자순(吳子淳)‧강서(康庶)‧박련(朴連)‧이군해(李君侅)‧윤환(尹桓) 등 충혜왕의 폐행(嬖幸) 20여명을 장류(杖流)하였다.
그러나 뇌물을 밝히고 권세를 부려 원망을 샀으며, 마침 조적(曺頔) 등 충혜왕 폐행들이 원나라에 소원(訴寃)함으로써 원나라에서 파견된 객성태사(客省太史) 도치(都赤)에 의하여 정동행성에 수감되고 그뒤로는 활동하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이익주(李益柱)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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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