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李韌)
[상세내용]
이인(李韌)
미상∼1381년(우왕 7). 고려의 문신.
1362년(공민왕 11)에 전사관편수관(前史館編修官)으로서 글을 올려 시무10조(時務十條)를 진술하였다.
1364년 대호군 이성림(李成林)과 함께 전교부령(典校副令)으로 중국의 장사성(張士誠)에게 가서 보빙(報聘)하였다.
1371년 신돈(辛旽)이 대사를 일으키려 할 때 선부의랑(選部議郞)으로 신돈의 문객이 되어 몰래 흉모를 자세히 기록하였다가 일이 급해지자 한림거사(寒林居士)라 칭하고 글을 써서 재상 김속명(金續命)의 집에 던져놓고 급히 도망하였다.
김속명이 이 사실을 왕에게 고하여 순위부(巡衛府)에 명령하여 신돈의 무리를 잡아 처벌하였다.
1381년 지문하부사상의(知門下府事商議)로 죽었다. 시호는 익효(翼孝)이다.
1362년(공민왕 11)에 전사관편수관(前史館編修官)으로서 글을 올려 시무10조(時務十條)를 진술하였다.
1364년 대호군 이성림(李成林)과 함께 전교부령(典校副令)으로 중국의 장사성(張士誠)에게 가서 보빙(報聘)하였다.
1371년 신돈(辛旽)이 대사를 일으키려 할 때 선부의랑(選部議郞)으로 신돈의 문객이 되어 몰래 흉모를 자세히 기록하였다가 일이 급해지자 한림거사(寒林居士)라 칭하고 글을 써서 재상 김속명(金續命)의 집에 던져놓고 급히 도망하였다.
김속명이 이 사실을 왕에게 고하여 순위부(巡衛府)에 명령하여 신돈의 무리를 잡아 처벌하였다.
1381년 지문하부사상의(知門下府事商議)로 죽었다. 시호는 익효(翼孝)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이상선(李相瑄)
성명 : "이인(李韌)"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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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