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유(李伯由)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BC31C720D1399X0 |
시호(諡號) | 양후(良厚) |
생년 | ?(미상) |
졸년 | 1399(정종 1) |
시대 | 고려후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몽(李蒙) |
공신호 | 개국공신 |
[상세내용]
이백유(李伯由)
미상∼1399년(정종 1). 고려말 조선 초기의 문신‧개국공신. 본관은 전주(全州).
이몽(李蒙)의 아들이고, 이색(李穡)의 문인이다.
1371년(공민왕 20)에 문과 동진사(同進士: 丙科에 해당) 제7위로 급제, 1389년(공양왕 1) 문하부태상시(門下府太常侍)에 이르렀다.
1392년 예조판서를 지내고 그해 7월 배극렴(裵克廉)‧남은(南誾) 등과 함께 백관을 인솔하여 이성계(李成桂)의 집으로 찾아가 그를 왕으로 추대하고, 조선왕조를 개창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 공으로 개국공신에 책립되고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에 봉해졌다.
그러나 1398년(태조 7)제1차 왕자의 난에 정도전(鄭道傳)일파로 지목되어 관작과 공신의 칭호를 삭탈당하고, 지방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에 죽었다.
죽은 뒤에 부분 복권되어 양후(良厚)라는 시호를 받았다. 조선왕조의 건국에 핵심세력이 된 신진사대부의 한 사람이었으나 권력 재편 과정에서 축출되었다.
이몽(李蒙)의 아들이고, 이색(李穡)의 문인이다.
1371년(공민왕 20)에 문과 동진사(同進士: 丙科에 해당) 제7위로 급제, 1389년(공양왕 1) 문하부태상시(門下府太常侍)에 이르렀다.
1392년 예조판서를 지내고 그해 7월 배극렴(裵克廉)‧남은(南誾) 등과 함께 백관을 인솔하여 이성계(李成桂)의 집으로 찾아가 그를 왕으로 추대하고, 조선왕조를 개창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 공으로 개국공신에 책립되고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에 봉해졌다.
그러나 1398년(태조 7)제1차 왕자의 난에 정도전(鄭道傳)일파로 지목되어 관작과 공신의 칭호를 삭탈당하고, 지방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에 죽었다.
죽은 뒤에 부분 복권되어 양후(良厚)라는 시호를 받았다. 조선왕조의 건국에 핵심세력이 된 신진사대부의 한 사람이었으나 권력 재편 과정에서 축출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太祖實錄
定宗實錄
國朝榜目
太祖實錄
定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이영춘(李迎春)
시호 : "양후(良厚)"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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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