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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득분(李得芬)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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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고려후기
활동분야관료 > 환관

[상세내용]

이득분(李得芬)
생졸년 미상. 여말선초의 환관(宦官).

선대에 작은 공로가 있고, 우왕에게 총애를 받아 벼슬이 찬성사에 이르렀는데 탐욕하여 뇌물을 받고 불의를 많이 자행하였다.

1380년(우왕 6) 왕이 성남(城南)에 사냥을 나갔을 때 환관 김실(金實)과 함께 수성원수(守城元帥)가 되어 성을 지켰다.

이듬해에 동지밀직(同知密直) 목충(睦忠)과 함께 이인임(李仁任)최영(崔瑩) 등을 참소하다가 도리어 전에 보원고제조(普源庫提調)로 있을 때 전세(田稅)를 횡령하고 양현고(養賢庫)의 전(田)을 점탈한 것과 자기 집에 세자를 모셔 사사로이 유모를 갈아 사당(私黨)을 맺는 등 신하로서 질서를 문란하게 한 일로 재추(宰樞)와 대성(臺省)의 탄핵을 받았다.

그래서 계림(鷄林)에 유배되고 그의 가산은 적몰(籍沒)당하였으며, 양자인 환관 정난봉(鄭鸞鳳)도 폄출되었다. 조선 개국 후에 풀려나와 1396년(태조 5)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가 되었다.

1398년 뇌물을 받은 죄로 길주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에 풀려나 경외종편(京外從便) 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太祖實錄
定宗實錄
燃藜室記述

[집필자]

박천식(朴天植)
대표명이득분(李得芬)
성명이득분(李得芬), 이득분(李淂芬)

성명 : "이득분(李得芬)"에 대한 용례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