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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취(尹就)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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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고려후기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윤취(尹就)
생졸년 미상. 고려의 문신.

우왕 때에 장령(掌令)으로서 문하평리 겸 대사헌(文下評理兼大司憲) 안종원(安宗源) 등과 더불어 상소하기를 “근래에 대명(大明)이 우리나라를 견책하여 매양 시(諡)와 승습(承襲)을 청할 때에 덕음(德音)을 내리지 아니하고 우리나라에서 산출치 아니하는 금‧은과 마필로써 정하여 세공(歲貢)을 삼아 그 수가 심히 많으니 비록 문무관 이상으로부터 산관(散官)에 이르기까지 추렴하여도 오히려 액(額)을 채우지 못하는데 이를 탐하는 무식자가 대체(大體)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그 판매하는 것을 이롭게 여겨 소지하는 사물이 진헌(進獻)하는 수의 십중팔구가 되었으므로 대명이 더욱 우리를 정직하지 않다 하여 곧 사신을 막고 곧게 들이지 않는데 이제 또 사자(使者)를 대명에 보내니 안위(安危)가 매인 바입니다.

그 사물(私物)은 마땅히 차등있게 수(數)를 정하고 수 이외에는 비록 한필의 포(布)라도 가져가지 못하게 하고 청백하고 덕망있는 자를 서경안주 등에 뽑아 보내어 도순문사로 더불어 수검(搜檢)하여 만일 사사(私事)로 가진 금‧은, 마필과 수외(數外)의 포필(布匹)이 있거든 극형에 처하고 처노(妻奴)와 가산을 관에 몰입할 것이며 그 정(情)을 알고 금하지 아니한 자는 직(職)을 삭탈할 것이며 또 일행중에 범금자(犯禁者)가 있으면 정사와 부사도 또한 다 죄를 과하소서.” 하니 이를 따랐다.

1385년(우왕 11) 3월에 대언으로서 성균시(成均試)를 맡았는데 뽑힌 사람이 모두 세력있는 집안의 어린아이들이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이를 비웃어 분홍방(粉紅榜)이라 하였으니, 그것은 어린아이들이 분홍옷 입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4월 좌대언으로서 임공위(任公緯) 등 99인을 취하였다.

10월 최천검(崔天儉)의 집 종이 무례하기 때문에 때렸는데, 왕의 총애를 받고 있던 용덕(龍德)이 왕에게 호소하니 파면되어 서인(庶人)을 삼았다.

한편, 용덕과 그 아버지 최천검은 이듬해 귀양보내졌다.

1387년 6월에는 밀직부사로서 명나라 경사(京師)에 가서 천추절(千秋節)을 축하하였다.

1391년(공양왕 3) 12월에는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가 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박경안(朴京安)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