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표(尹之彪)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4C9C0D45CU9999X0 |
시호(諡號) | 충간(忠簡) |
생년 | 1310(충선왕 2) |
졸년 | 1382(우왕 8) |
시대 | 고려후기 |
본관 | 해평(海平) |
활동분야 | 관료 > 상신 |
부 | 윤윤석(尹尹碩) |
부 | 윤윤보(尹尹寶) |
조부 | 윤만비(尹萬庇) |
[상세내용]
윤지표(尹之彪)
1310년(충선왕 2)~1382년(우왕 8). 고려 공민왕 때의 재상. 본관은 해평(海平).
조부는 충렬왕 때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를 지낸 윤만비(尹萬庇)이며, 부친은 충혜왕의 폐행(嬖幸)으로 좌정승에까지 오른 윤석(尹碩)이다. 아들 윤보(尹寶)는 대호군을 지냈다.
1332년(충숙왕 복위 1) 충숙왕이 복위하여 충혜왕의 폐신(嬖臣)들을 처벌할 때 대호군으로 있으면서 이에 연루되어 순군(巡軍)에 갇혔다가 섬에 유배되었다.
1344년(충목왕 즉위) 서연(書筵)이 설치되자 상호군으로서 시독관(侍讀官)이 되었으며, 그뒤 평양윤을 거쳐 1347년에는 서북면존무사(西北面存撫使)로 나갔다.
1355년(공민왕 4) 밀직부사로서 원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공민왕 비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에게 승의(承懿)의 호를 내려준 것을 사례하고 돌아왔다. 이해에 해평군(海平君)에 봉하여졌으며, 이후 관직은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에 이르렀다.
성품이 관후하여 모가 나지 않았고, 몽고어를 조금 할 줄 알았다고 한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조부는 충렬왕 때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를 지낸 윤만비(尹萬庇)이며, 부친은 충혜왕의 폐행(嬖幸)으로 좌정승에까지 오른 윤석(尹碩)이다. 아들 윤보(尹寶)는 대호군을 지냈다.
1332년(충숙왕 복위 1) 충숙왕이 복위하여 충혜왕의 폐신(嬖臣)들을 처벌할 때 대호군으로 있으면서 이에 연루되어 순군(巡軍)에 갇혔다가 섬에 유배되었다.
1344년(충목왕 즉위) 서연(書筵)이 설치되자 상호군으로서 시독관(侍讀官)이 되었으며, 그뒤 평양윤을 거쳐 1347년에는 서북면존무사(西北面存撫使)로 나갔다.
1355년(공민왕 4) 밀직부사로서 원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공민왕 비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에게 승의(承懿)의 호를 내려준 것을 사례하고 돌아왔다. 이해에 해평군(海平君)에 봉하여졌으며, 이후 관직은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에 이르렀다.
성품이 관후하여 모가 나지 않았고, 몽고어를 조금 할 줄 알았다고 한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박옥걸(朴玉杰)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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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0-08-11 | 목은 이색 찬 해평군 시충간 윤공묘지명(海平君 諡忠簡 尹公墓誌銘)을 참고하여 생졸년 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