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관(元瓘)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6D0AD00FFFFB1247X0 |
초명(初名) | 정(貞) |
이명(異名) | 관(灌) |
생년 | 1247(고종 34) |
졸년 | 1316(충숙왕 3) |
시대 | 고려후기 |
본관 | 원주(原州) |
활동분야 | 관료 > 상신 |
부 | 원부(元傅) |
처부 | 홍녹도(洪祿道) |
처부 | 곽세필(郭世弼) |
처부 | 김신(金信) |
[상세내용]
원관(元瓘)
1247년(고종 34)~1316년(충숙왕 3). 고려 충렬왕‧충선왕 때의 재상. 원관(元灌)으로 쓰기도 한다. 본관은 원주(原州). 초명은 원정(元貞).
부친은 충렬왕 때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를 지낸 원부(元傅)이고, 동생이 충렬왕 때 응방(鷹坊)을 관장하였던 원경(元卿)이며, 아들은 충숙왕 때 첨의찬성사에 오른 원충(元忠)이다. 세번 장가들었는데, 장인은 홍녹도(洪祿道)‧곽세필(郭世弼)‧김신(金信)이다.
1266년(원종 7)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279년(충렬왕 5)에는 독로화(禿魯花)로서 원에 보내졌다.
그뒤 고려에 돌아와 1287년 판비서시사(判祕書寺事)‧보문각학사를 역임하였고, 다음해에는 전법판서로 있다가 환관(宦官)과 내료(內僚)들에 의해서 파직되었다.
뒤에 복직되어 재추의 반열에 올랐으며, 1298년 충렬왕이 복위한 직후에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판도판서에 임명되었고, 1309년(충선왕 1)에는 밀직사가 되었다. 벼슬이 첨의찬성사에 이르렀다.
부친은 충렬왕 때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를 지낸 원부(元傅)이고, 동생이 충렬왕 때 응방(鷹坊)을 관장하였던 원경(元卿)이며, 아들은 충숙왕 때 첨의찬성사에 오른 원충(元忠)이다. 세번 장가들었는데, 장인은 홍녹도(洪祿道)‧곽세필(郭世弼)‧김신(金信)이다.
1266년(원종 7)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279년(충렬왕 5)에는 독로화(禿魯花)로서 원에 보내졌다.
그뒤 고려에 돌아와 1287년 판비서시사(判祕書寺事)‧보문각학사를 역임하였고, 다음해에는 전법판서로 있다가 환관(宦官)과 내료(內僚)들에 의해서 파직되었다.
뒤에 복직되어 재추의 반열에 올랐으며, 1298년 충렬왕이 복위한 직후에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판도판서에 임명되었고, 1309년(충선왕 1)에는 밀직사가 되었다. 벼슬이 첨의찬성사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이익주(李益柱)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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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