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朴義)
[상세내용]
박의(朴義)
미상∼1321년(충숙왕 8). 고려 후기의 폐신. 본관은 밀양(密陽). 충렬왕 때 매와 개를 잘 다루어 총신(寵臣)이 되었다.
1276년(충렬왕 2) 낭장으로 매를 바치러 원나라에 다녀와 응방(鷹坊)을 관리하였다.
그뒤 장군이 되어 여러 차례 원나라에 다녀왔으며, 1283년 응방도감을 설치하였을 때 부사(副使)가 되었다. 그는 꼬리의 깃이 14개나 달린 진귀한 새매〔鷂〕를 원나라 황제에게 바치고 돌아와 황제의 명으로 대장군이 되었다고 자칭하여, 그뒤 대장군으로 원나라에 매를 바치러 다녀왔다.
그뒤 충렬왕 비 장목왕후(莊穆王后: 齊國大長公主)의 뜻에 거슬려 섬으로 유배되고 가산이 몰수되었으나, 곧 풀려나와 1291년 우부승지‧좌승지가 되었으며, 1294년에는 좌복야로 서북면도지휘사가 되었다.
1297년에는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로 원나라에 다녀왔고, 이어 지밀직사사 세자원빈(知密直司事世子元賓)이 되었다. 충선왕이 즉위하자 동지자정원사(同知資政院事)에 올라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가 더해지고 밀양군(密陽君)에 봉해졌다.
1276년(충렬왕 2) 낭장으로 매를 바치러 원나라에 다녀와 응방(鷹坊)을 관리하였다.
그뒤 장군이 되어 여러 차례 원나라에 다녀왔으며, 1283년 응방도감을 설치하였을 때 부사(副使)가 되었다. 그는 꼬리의 깃이 14개나 달린 진귀한 새매〔鷂〕를 원나라 황제에게 바치고 돌아와 황제의 명으로 대장군이 되었다고 자칭하여, 그뒤 대장군으로 원나라에 매를 바치러 다녀왔다.
그뒤 충렬왕 비 장목왕후(莊穆王后: 齊國大長公主)의 뜻에 거슬려 섬으로 유배되고 가산이 몰수되었으나, 곧 풀려나와 1291년 우부승지‧좌승지가 되었으며, 1294년에는 좌복야로 서북면도지휘사가 되었다.
1297년에는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로 원나라에 다녀왔고, 이어 지밀직사사 세자원빈(知密直司事世子元賓)이 되었다. 충선왕이 즉위하자 동지자정원사(同知資政院事)에 올라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가 더해지고 밀양군(密陽君)에 봉해졌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손홍렬(孫弘烈)
봉호 : "밀양군(密陽君)"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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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