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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득황(羅得璜)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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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고려후기
본관금성(錦城)
활동분야문신 > 문신
조부나인겸(羅仁謙)
조부나효전(羅孝全)
증조부나국영(羅國英)
처부정국정(鄭國貞)
외조부손유백(孫遺白)

[상세내용]

나득황(羅得璜)
생졸년 미상. 고려 후기의 문신. 일명 나득거(羅得巨). 본관은 금성(錦城). 삼한공신 대광(大匡) 나총례(羅聰禮)의 9대손이며, 증조부는 나국영(羅國英)이고, 조부는 나인겸(羅仁謙)이며, 부는 나효전(羅孝全)이다. 외조부는 나주손씨 손유백(孫遺白)이고, 처부는 나주정씨 정국정(鄭國貞)이다.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나유(羅裕)의 아버지이다.

최이(崔怡)선지사용별감(宣旨使用別監)으로 삼아 지방에 파견하였는데, 이때 주구(誅求)가 심하여 백성이 괴롭게 여겼다.

그뒤 최항(崔沆)에게 아첨하여 장흥부사(長興副使)가 되었다가 전라안찰사가 되었다.

1260년(원종 1) 정월에 장물죄로 파면당한 송소(宋佋)를 대신하여 제주부사(濟州副使)가 되었는데, 현지에 이르자 사람들이 “제주도는 옛적에는 작은 도적을 겪었는데 지금은 큰 도적을 만났다.”고 하였다.

그 다음달 경자(庚子)에 제주부사판예빈성사(判禮賓省事)로서 방호사(防護使)를 겸하였는데, 이는 제주가 바다 가운데 큰 진(鎭)으로 송상(宋商)과 왜(倭)의 내왕이 잦아지므로 유사시에 대비하여 취해진 것이다.

1263년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가 되었으며, 관직이 형부상서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나각순(羅恪淳)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1-10-05錦城羅氏族譜(1747, 정묘보)를 참고하여 본관을 나주(羅州)에서 금성(錦城)으로 수정함. 일명, 부, 조부, 증조부, 외조, 처부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