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金敞)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AE40CC3DFFFFD1256X0 |
이명(異名) | 효공(孝恭) |
시호(諡號) | 문간(文簡) |
생년 | ?(미상) |
졸년 | 1256(고종 43) |
시대 | 고려후기 |
본관 | 안동(安東[舊])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김창(金敞)
미상∼1256년(고종 43). 고려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舊]). 초명은 김효공(金孝恭).
희종 때에 급제하여, 사관을 거쳐 병부우승(兵部右丞)이 되었다. 고종 때에 최우(崔瑀)에게 등용되어 정방에서 전선(銓選)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였는데, 이때 이부‧병부의 선발에 응한 자가 무려 수백명이었지만 한번 보고 그 이름을 다 기억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최우의 지시대로만 따른다는 비난도 받았다.
1237년에 대복시사로서 국자감시의 시관이 되었으며, 1242년에는 추밀원부사로서 지공거가 되어 홍지경(洪之慶) 등 진사를 선발하였다.
그뒤 추밀원사를 거쳐 문하평장사가 되었다.
최씨 집권자의 신임을 얻어 오랫동안 정치의 실권을 장악하였으나, 진퇴를 분명히 하여 육십이 되어서 재상이 될 정도로 청렴하였다.
1256년 수태사 문하시랑평장사 판이부사(守太師門下侍郞平章事判吏部事)로 죽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희종 때에 급제하여, 사관을 거쳐 병부우승(兵部右丞)이 되었다. 고종 때에 최우(崔瑀)에게 등용되어 정방에서 전선(銓選)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였는데, 이때 이부‧병부의 선발에 응한 자가 무려 수백명이었지만 한번 보고 그 이름을 다 기억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최우의 지시대로만 따른다는 비난도 받았다.
1237년에 대복시사로서 국자감시의 시관이 되었으며, 1242년에는 추밀원부사로서 지공거가 되어 홍지경(洪之慶) 등 진사를 선발하였다.
그뒤 추밀원사를 거쳐 문하평장사가 되었다.
최씨 집권자의 신임을 얻어 오랫동안 정치의 실권을 장악하였으나, 진퇴를 분명히 하여 육십이 되어서 재상이 될 정도로 청렴하였다.
1256년 수태사 문하시랑평장사 판이부사(守太師門下侍郞平章事判吏部事)로 죽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신천식(申千湜)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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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