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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후(金允侯)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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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고려후기
활동분야종교 > 불교인

[상세내용]

김윤후(金允侯)
생졸년 미상. 고려 고종 때의 승장(僧將).

일찍이 중이 되어 백현원(白峴院)에 있다가 1232년(고종 19)에 몽고병이 침입하므로 처인성(處仁城: 지금의 龍仁)에 피난하였는데, 이때 몽고의 원수 살리타이(撒禮塔)를 활로 쏘아 죽였다. 그 공으로 상장군에 임명되었으나 굳이 사양하여 섭랑장(攝郞將)에 임명되고, 뒤에 충주산성방호별감(忠州山城防護別監)이 되었다.

그때 몽고군이 쳐들어와 주성(州城)을 포위한 지 70여일이 되어 식량이 떨어져 위태롭게 되었을 때, 병사들을 독려하기를 “만일 힘을 다하면 귀천 없이 모두 관작을 제수할 것이다.”라 하고 마침내 관노(官奴)의 부적을 불사르고 노획한 소와 말을 나누어주니, 모두 죽음을 무릅쓰고 나가 싸워 적을 물리쳤다.

그 공으로 감문위상장군(監門衛上將軍)이 되었고, 그밖에 군공을 세운 자들도 관노‧백성 할것없이 모두 관작이 제수되었다.

1258년에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가 되었으나, 그때 동북면은 이미 몽고군의 수중에 들어갔으므로 부임하지 못하였다.

1262년(원종 3)에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예부상서가 되었으며, 이듬해 수사공 우복야(守司空右僕射)로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났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민병하(閔丙河)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