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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항(金若恒)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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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구경(久卿)
호(號)척약재(惕若齋)
생년?(미상)
졸년1397(태조 6)
시대고려후기
본관광산(光山)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정(金鼎)

[상세내용]

김약항(金若恒)
미상∼1397년(태조 6). 고려말과 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구경(久卿), 호는 척약재(惕若齋).

부친은 대광(大匡) 김정(金鼎)이다.

1371년(공민왕 20)에 문과에 급제하여 전교주부(典校主簿)예의총랑(禮儀摠郞)을 역임하고, 1390년(공양왕 2)에 사헌장령(司憲掌令)이 되었으나 설화(舌禍)를 입어 지곡주군사(知谷州郡事)로 좌천되었다가 그해 10월에 강원도염문계점사(江原道廉問計點事)를 지내고, 1392년에 사헌집의(司憲執義)가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자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가 되고, 1395년(태조 4)에는 명나라에 들어가 억류된 사절 유순(柳珣) 등을 송환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표전(表箋)의 내용이 불공하다 하여 명나라에 불려가 억류되었다가, 곧 풀려나 현지에서 조선 조정으로부터 광산군(光山君)으로 봉해졌다. 뒤에 다시 다른 일로 인해 양쯔강(揚子江)으로 귀양갔다가 1397년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태종 때에 이르러 의정부찬성사로 추증되었으며 그의 자손들도 다시 등용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신천식(申千湜)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