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김보(金普)

[요약정보]

UCIG002+AKS-KHF_12AE40BCF4FFFFU9999X1
호(號)죽강(竹岡)
시호(諡號)충간(忠簡)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고려후기
본관김해(金海)
활동분야문신 > 문신
공신호수종공신(隨從功臣)
공신호일등공신
공신호충근양절광보공신(忠勤亮節匡輔功臣)

[상세내용]

김보(金普)
생졸년 미상. 고려의 문신. 공민왕의 수종공신(隨從功臣).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죽강(竹岡). 당시의 권신 김용(金鏞) 등과 더불어 권행(權幸)을 다투던 친원파 인물이다.

1351년(공민왕 즉위) 공민왕이 고려왕으로 지명됨에 따라 왕을 호종하여 입국하였으며 그해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다시 첨의평리(僉議評理)에 임명되고 의성(義城) 덕천창제조(德泉倉提調)를 겸하였다.

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부터 따랐던 수종공신들을 녹훈(錄勳)할 때 찬성사(贊成事) 조일신(趙日新) 등과 더불어 일등공신에 오르고 아울러 충근양절광보공신(忠勤亮節匡輔功臣)의 호를 하사받았으며, 뒤에 금녕부원군(金寧府院君)에 봉해졌다.

1354년 찬성사에 임명되어 지밀직사사 전보문(全普門)과 더불어 하정사(賀正使)원나라에 파견되었으며, 그뒤에도 여러 차례 원나라에 드나들었다. 공민왕의 비호를 받고 김용과 권세를 다투면서 인사행정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그 세력이 자못 강성하였다.

그러던 중 1355년 어머니의 상(喪)을 당하게 되자 김용은 복직을 봉쇄하기 위하여 거짓 왕명을 꾸며 백관들로 하여금 부모상에 3년간 벼슬을 쉬도록 하는 법을 시행하게 하였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왕이 3년상을 폐지, 다시 불러들여 첨의평리에 복관하고, 이어 중서문하시랑평장사판밀직(中書門下侍郞平章事判密直)에 제수하였다.

1356년에 반원정치(反元政治)가 결행됨에 따라 부원배(附元輩)의 거두였던 기철(奇轍) 등이 주륙되면서 함께 체포되어 장형(杖刑)을 받고 가라산(加羅山)으로 유배되었다.

그뒤에 신돈(辛旽)이 집권하면서 이춘부(李春富)와 함께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에 발탁되더니, 곧 이어 수시중(守侍中)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신돈과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같은해 9월에 면직되었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新增東國輿地勝覽

[집필자]

윤용혁(尹龍爀)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