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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金濤)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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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장원(長源)
생년?(미상)
졸년1379(우왕 5)
시대고려후기
본관연안(延安)
활동분야문신 > 문신
출신지연안부(延安府)

[상세내용]

김도(金濤)
미상∼1379년(우왕 5). 고려 말의 문신. 자는 장원(長源). 본관은 연안(延安). 연안부(延安府) 출신.

1370년(공민왕 19) 8월 박실(朴實)유백유(柳伯濡) 등과 함께 향공으로 뽑혀 정조사(正朝使) 권균(權鈞)을 따라 명나라에 갔다.

이듬해에 제과(制科)에 급제, 동창부(東昌府) 구현(丘縣)의 승(丞)에 임명되었으나, 중국어에 서투르고 고향에 노친이 있음을 이유로 사퇴하고 돌아왔다. 그가 귀국하자 공민왕은 예로 맞이하고 우사간 예문관응교(右司諫藝文館應敎)를 초수(超授)하였다.

여러 관직을 거쳐 성균사예(成均司藝)에 오르고 우왕이 즉위하자 문하사인(門下舍人)으로서 좌사의(左舍議) 유순(柳珣), 기거사인(起居舍人) 박상진(朴尙眞), 우사의대부(右司議大夫) 안종원(安宗源) 등과 함께 환관의 정치간여 금지를 내용으로 도당(都堂)에 글을 올렸다.

또, 좌사의 안종원, 보궐(補闕) 임효선(林孝先), 정언(正言) 노숭(盧嵩) 등과 함께 왕에게 김흥경(金興慶)과 그 일당 왕백(王伯)안소(安沼)정귀수(鄭貴壽) 등을 내쫓고 유신(維新)의 정교(政敎)를 펼 것을 상소하여 김흥경언양(彦陽)으로 귀양보내고 그의 집을 몰수하였다.

1376년(우왕 2) 12월에 좌부대언(左副代言)에 오르고, 이듬해 3월에는 지신사(知申事)로서 국자감시관(國子監試官)이 되어 정전(鄭悛) 등 99인을 뽑았으며, 곧 밀직제학(密直提學)으로 승진하였다.

이때 찬성사 홍중선(洪仲善)과 어울려 반대세력을 비판하여 권신 이인임(李仁任)의 미움을 받게 되었는데, 1379년 가노(家奴)가 연경궁(延慶宮) 옛터의 돌을 훔친 일로 이인임의 탄핵을 받아 파면되었다.

그러나 환관 이득분(李得芬)의 도움으로 화는 면하였으나, 같은해 7월에 양백연(楊伯淵)의 옥사에 연루되어 효수당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신천식(申千湜)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