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직(金敬直){1}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ACBDC9C1U9999X1 |
호(號) | 우정(憂亭)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고려후기 |
본관 | 언양(彦陽)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윤(金倫) |
[상세내용]
김경직(金敬直)
생졸년 미상. 고려 공민왕 때의 문신. 본관은 언양(彦陽). 호는 우정(憂亭). 정승 김윤(金倫)의 아들이다.
1349년(충정왕 1) 밀직사에 있을 때, 일찍이 왕을 헐뜯었던 관계로 섬에 장류(杖流)되었다.
1351년 공민왕이 즉위하자 밀직부사에 다시 등용되고, 곧 첨의평리(僉議評理)에 올랐다.
1354년(공민왕 3)에 첨의평리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원나라에 다녀와서 찬성사(贊成事)가 되었다.
이듬해 삼사우사(三司右使)를 거쳐 언양부원군(彦陽府院君)에 봉해졌다.
이듬해 전라도도순문사(全羅道都巡問使)로 나갔으며, 이해 공민왕이 기철(奇轍) 일당을 제거하고 배원정책을 펼 때 서북면도원수(西北面都元帥)로 임명되어 압록강 방면을 수비하였다.
1357년 수사도 상주국 언양백(守司徒上柱國彦陽伯)에 봉해지고 검교시중(檢校侍中)에 이르렀다.
1349년(충정왕 1) 밀직사에 있을 때, 일찍이 왕을 헐뜯었던 관계로 섬에 장류(杖流)되었다.
1351년 공민왕이 즉위하자 밀직부사에 다시 등용되고, 곧 첨의평리(僉議評理)에 올랐다.
1354년(공민왕 3)에 첨의평리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원나라에 다녀와서 찬성사(贊成事)가 되었다.
이듬해 삼사우사(三司右使)를 거쳐 언양부원군(彦陽府院君)에 봉해졌다.
이듬해 전라도도순문사(全羅道都巡問使)로 나갔으며, 이해 공민왕이 기철(奇轍) 일당을 제거하고 배원정책을 펼 때 서북면도원수(西北面都元帥)로 임명되어 압록강 방면을 수비하였다.
1357년 수사도 상주국 언양백(守司徒上柱國彦陽伯)에 봉해지고 검교시중(檢校侍中)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燃藜室記述
高麗史節要
燃藜室記述
[집필자]
손홍렬(孫弘烈)
봉호 : "언양백(彥陽伯)"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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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