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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崔宰)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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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재지(宰之)
생년1303(충렬왕 29)
졸년1378(우왕 4)
시대고려후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최득평(崔得枰)

[상세내용]

최재(崔宰)
1303년(충렬왕 29)∼1378년(우왕 4). 고려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재지(宰之). 선부전서(選部典書) 최득평(崔得枰)의 아들이다.

1321년(충숙왕 8) 동대비원녹사(東大悲院錄事)로 출발, 산원(散員)별장(別將)을 거쳐 1330년 과거에 급제하였다.

충숙왕 복위연간에 중부령(中部令)감찰지평(監察持平)을 지내고, 충목왕 즉위초에는 전법정랑(典法正郞)을 거쳐 지흥주사(知興州事)로 외보(外補)되어 백성을 잘 다스렸으나 권신 인승단(印承旦)의 미움을 받아 파직되었다.

1347년(충목왕 3) 정치도감(整治都監)이 설치되어 권문세가의 토지‧노비 등의 부당한 탈점을 정리할 때 판관(判官)으로 참여하였으며, 이듬해 경상도안찰사(慶尙道按察使)로 나갔다가 다시 전객부령(典客副令)자섬사사(資贍司使)로 옮겼다.

1349년(충정왕 1) 양주수(襄州守)로 나가 있던 중 원나라강향사(降香使)가 존무사(存撫使)를 부당하게 욕보이는 것을 보고 개탄, 항의의 표시로 사직하였으나 이로 인하여 오히려 감찰장령(監察掌令)에 특진되었다.

공민왕 즉위 후 개성소윤(開城少尹)전법총랑(典法摠郞)감찰집의(監察執義)상서우승(尙書右丞)대부시사(大府寺事) 등의 관직을 차례로 역임하면서 왕으로부터 직접 칭찬을 받을 만큼 많은 치적을 올렸다.

1359년(공민왕 8) 다시 공주목사(公州牧使)로 출보되었으며, 1361년 상주목사(尙州牧使)로 옮겼다. 이해 겨울 홍건적의 재침으로 피난하는 왕을 상주에서 맞게 되는데, 호종하였던 관리들의 참소로 파직되었으나 1364년 감찰대부(監察大夫)로 기용되고, 중대광 완산군(重大匡完山君)에 봉하여졌다.

그뒤 전리판서(典理判書)개성윤(開城尹)을 역임하였으며, 1374년 벼슬을 사퇴하고 향리로 돌아갔다. 우왕 때에 밀직부사 상의(密直副使商議)를 제배하였으나 고사하였다. 성품이 강직하여 사람들이 중히 여겼다고 한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주1)
시호
기년편고 최유경 편의 기사 "崔有慶全州人提學完山君謚文貞宰子字慶之號竹亭...." 참고. 본인의 고려문과방목, 『증보문헌비고』 제240권, 「직관고 27」, [시호 2], [역대 명신 시호 1]를 참조.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牧隱集

[집필자]

윤용혁(尹龍爀)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