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계(朴元桂)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C15C6D0ACC4B1282X0 |
생년 | 1282(충렬왕 8) |
졸년 | 1348(충목왕 4) |
시대 | 고려후기 |
본관 | 영해(寧海)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박관(朴琯) |
조부 | 박문규(朴文圭) |
[상세내용]
박원계(朴元桂)
1282년(충렬왕 8)∼1348년(충목왕 4). 고려 말기의 문신. 본관은 영해(寧海). 박문규(朴文圭)의 손자이며, 박관(朴琯)의 아들이다. 안향(安珦)의 제자인 부원군(府院君) 권부(權溥)의 문인이다.
1301년(충렬왕 27) 문과에 이제현(李齊賢) 등과 같이 급제하였는데, 이 시험의 지공거(知貢擧)는 밀직사사(密直司事) 권부, 동지공거(同知貢擧)는 좌부승지 조간(趙簡)이었다.
전주목사록 겸 장서기(全州牧司錄兼掌書記)를 거쳐 권지전교교감(權知典校校勘)이 되었다. 충선왕이 원나라 연경(燕京)에 있을 때는 예문관검열로서 보좌하였다.
1335년(충숙왕 복위년 4) 장령(掌令)으로 있을 때 전법(銓法)이 어지러웠는데 대관(臺官) 신군평(申君平)이 끝까지 서명을 거부하여 파직되었던 고신(告身)에 서명하여 사람들로부터 비겁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뒤에 집의로 승진하였고, 강릉도존무사를 거쳐 전법판서를 지냈으며, 1348년(충목왕 4) 이학도감판사(吏學都監判事)가 되었다.
1301년(충렬왕 27) 문과에 이제현(李齊賢) 등과 같이 급제하였는데, 이 시험의 지공거(知貢擧)는 밀직사사(密直司事) 권부, 동지공거(同知貢擧)는 좌부승지 조간(趙簡)이었다.
전주목사록 겸 장서기(全州牧司錄兼掌書記)를 거쳐 권지전교교감(權知典校校勘)이 되었다. 충선왕이 원나라 연경(燕京)에 있을 때는 예문관검열로서 보좌하였다.
1335년(충숙왕 복위년 4) 장령(掌令)으로 있을 때 전법(銓法)이 어지러웠는데 대관(臺官) 신군평(申君平)이 끝까지 서명을 거부하여 파직되었던 고신(告身)에 서명하여 사람들로부터 비겁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뒤에 집의로 승진하였고, 강릉도존무사를 거쳐 전법판서를 지냈으며, 1348년(충목왕 4) 이학도감판사(吏學都監判事)가 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牧隱文藁
高麗名賢集
牧隱文藁
高麗名賢集
[집필자]
박옥걸(朴玉杰)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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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