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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鄭瑎)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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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정현계(鄭玄繼)
자(字)회지(晦之)
시호(諡號)장경(章敬)
생년1254(고종 41)
졸년1305(충렬왕 31)
시대고려후기
본관청주(淸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조부정의(鄭顗)

[상세내용]

정해(鄭瑎)
1254년(고종 41)∼1305년(충렬왕 31). 고려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초명은 현계(玄繼). 자는 회지(晦之). 대장군 정의(鄭顗)의 손자이다.

부모를 일찍 여의었으나 학문에 힘써 과거에 급제하고 비서교감(祕書校勘)에 보임된 뒤 충렬왕초에 대상부녹사(大常府錄事)로서 필도치(必闍赤)가 되었고, 왕을 시종하여 원나라에 다녀온 뒤 합문지후(閤門祗候)에 올랐다.

1292년(충렬왕 18) 우승지가 되어 전주(銓注)를 관장함에 공정하다는 평이 있었다.

지신사(知申事)부지밀직(副知密直)남경유수(南京留守)광릉부윤(廣陵府尹)을 거쳐 1298년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에 올랐으나, 한희유(韓希愈)를 무고한 사건으로 이듬해 파직되었다.

1303년 첨의참리(僉議參理)에서 밀직사사, 이듬해 판삼사사(判三司事)를 역임하고, 1305년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에 이르렀으나 곧 죽었다.

1305년 지공거(知貢擧)를 맡아 한종유(韓宗愈)김영돈(金永旽)장자빈(張子贇) 등을 시취(試取)하였으며, 원나라로부터 정동행성낭중(征東行省郞中)유학제거(儒學提擧)에 제수되기도 하였다.

외유내강의 성품으로 마음은 너그럽고 조용하나 일에는 민첩하고 용감하다는 평을 들었다. 시호는 장경(章敬)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윤용혁(尹龍爀)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