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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李瑱)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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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이방연(李芳衍)
자(字)온고(溫古)
호(號)동암(東菴)
시호(諡號)문정(文定)
생년1244(고종 31)
졸년1321(충숙왕 8)
시대고려후기
본관경주(慶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저서『동암집』

[상세내용]

이진(李瑱)
1244년(고종 31)∼1321년(충숙왕 8). 고려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방연(芳衍). 자는 온고(溫古), 호는 동암(東菴). 삼한공신(三韓功臣) 이금서(李金書)의 후손으로, 이제현(李齊賢)의 아버지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백가에 박통하고 시에 능하다는 명성이 있었다. 과거에 급제하여 광주사록(廣州司錄)을 거쳐 직한림원(直翰林院)이 되었다.

충렬왕이 시부(詩賦)로써 친히 문신들을 시험하여 9명을 뽑았는데 제2등으로 뽑혔다. 기거중서사인(起居中書舍人)이 되었다가 안동부사로 나가 민폐를 없애고 학교를 일으키는 데 공헌하였다.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군부총랑(軍部憁郞)이 되고, 1297년(충렬왕 23)에 우사의대부 사림원학사 시우산기상시(右司議大夫 詞林院學士 試右散騎常侍)를 거쳐 대사성 밀직승지가 되었으며, 1303년에 전법판서(典法判書)가 되었다.

1307년 적폐(積弊)의 일소를 상소한 것이 채택되어 정당문학(政堂文學)이 된 뒤 상의 도첨의사사 찬성사(商議都僉議司事 贊成事)가 되었다.

1313년에 충숙왕이 즉위하자 검교첨의정승(檢校僉議政丞)이 되고 임해군(臨海君)에 봉하여졌으며, 1315년에는 과거의 고시관이 되어 진사를 뽑았다.

1320년에는 아들 이제현이 과거의 고시관이 되어 새 문생(門生)을 거느리고 수(壽)를 칭송하자 전왕인 충선왕이 은병(銀甁) 200개와 쌀 200석을 하사하였다.

체구가 크고 마음이 너그러웠으나 아들 이제현의 세력에 의지하여 남의 노비를 탈취한 것이 많아 호소하는 자가 많았다고 한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는 학문과 시와 술로 소요하였다.

충주 도통사(道統祠)에 배향되었으며, 저서로 『동암집』이 전한다. 시호는 문정(文定)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민병하(閔丙河)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